②야곱의 성공(축복의 목적)

Aug 29, 2021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출 32:10-12

 

야곱의 성공(축복의 목적) (창32:10-12) 

빈손에서 축복, 축복에서 다시 빈손 – 축복의 기본적 의미는 수고와 노력의 결과에 있다.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기대 이상인 경우와 이하의 경우가 있다. 수고와 노력이 반드시 결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결실이 보장되는 것이 축복의 기본적 의미이다. 성공 하고자 한다면 불철주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내 기대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축복의 여부가 수고와 노력의 결실을 결정한다. 100배 1000배, 무제한의 천문학적 결실이 가능하다. 

축복의 목적(소유권) – 축복의 목적이 소유인가 사용인가? 축복의 목적을 소유로 착각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 있다. 축복 받기 전과 축복 받은 후가 달라진다. 축복 전에는 축복 주시는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소중히 귀하게 여겼으나 축복 후에는 축복에 집중하여 하나님을 등한시하고 소홀히 하기 쉽다. 하나님과 가까웠던 관계가 먼 관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관심의 대상이 하나님에서 축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축복의 목적(소유권) – 축복을 소유했다는 착각은 하나님보다 축복을 더 중요시하는 현상은 축복을 우상으로 만들고 축복을 타락의 원인으로 만들고 축복을 죄를 만드는 원인 되게 하고 축복을 재앙과 고통, 저주로 만들어 인생을 실패하게 만든다. 축복 이후 예배를 기도를 헌신을 봉사를 순종을 소홀히 한다. 마귀는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또한 축복 받은 후 타락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축복 받은 후 타락하고 망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축복의 목적(사용권) – 소유권보다 사용권이 축복인 이유가 있다. 에덴에서부터 인간에게 소유권을 주시지 않고 사용권을 주셨다. 모든 과실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을 주셨다. (사용)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셨다. 소유권을 주셨다면 사용에 대하여 규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질을 소유했어도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육신이 있으나 건강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옷이 많아도 병원에 누워 있다면, 좋은 차가 있어도 신체 장애가 있으면 사용 못한다. 

축복 사용과 축복 지속(확장)의 함수관계 – 축복의 사용하는 방법과 기준과 목적이 축복의 지속과 중단, 확장과 축소와 취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명 감당 여부, 하나님의 우선 순위 준수 여부, 하나님 나라에 충성과 헌신 여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은 축복의 지속 및 확장을 결정하시기도 하고 축복을 중단 및 취소를 결정하시기도 한다. 자손 대대로 제사장의 임무를 허락하시기로 했던 엘리 제사장 가문에 대한 축복을 취소하는 장면이 삼상2:30에 나온다. 

순종의 목적과 축복의 목적 – 인간적 입장에서 순종의 목적은 축복이며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다. 심는 목적은 거둠에 있고 믿음의 목적은 구원과 문제 해결에 있다. 정상적인 목적이며 성경의 원리이다. 순종에 의해서만 축복을 주시고 기도에 의해서만 응답이 주어진다. 심어야만 거두게 된다.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 기본적인 성경의 원리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약속된 모든 것이 나의 삶에 주어지고 나타나고 성취된다. 

순종의 목적과 축복의 목적 –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축복하시는 목적은 나의 순종에 있고 응답의 목적이 나의 기도에 잇다. 거두게 하시는 목적이 나의 심는 것에 있고 구원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목적이 나의 믿음에 있다. 축복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나를 쓰시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분야(물질 건강 환경 조건 인간 관계 등등)를 축복하시는 것이다. 나의 순종과 기도와 충성과 믿음과 심는 삶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나의 목적을 위한 삶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삶 – 신앙 생활에는 목적을 기준하여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나의 목적을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신앙생활이 있고 하나님의 목적을 나를 통하여 이루시는 신앙생활이 있다. 기독교 신앙이라 해도 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신앙은 종교생활에 가깝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산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용하는 삶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삶 –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모세의 지팡이였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로 결정된 이후 같은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잡혀 쓰임 받을 때는 모세의 목적을 위해 모세의 힘에 의해 쓰임 받지만 지팡이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 쓰임 받으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쓰임 받는다.

인간 수준의 삶과 하나님 수준의 삶 – 인간적 기준과 목적을 위한 신앙 생활은 인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제한적인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기준과 목적을 위한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수준의 무제한적 삶이 된다. 연명에 급급한 인간적 한계에 갇힌 인생을 살수 있고 사명을 위해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 무한한 가능성의 삶을 살수 있다. 어떠한 기준과 목적을 가졌느냐에 따라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