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①

Jun 13, 2021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 7:7-12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7:7-12)

구하는 관계(기도 대상) – 기도는 누가 누구에게 구하는 것인가? 인간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공급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피조물은 필수적으로 창조주에 의해서만이 생존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창조주에 의해서 생존하고 있다는 숙명적 사실을 피할 수가 없다. 단지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구하는 관계(기도 대상) – 비인격적 피조물은 의식하지 못한 채 창조주의 공급에 의해 생존하지만 인격적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존재를 의식하고 피조물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 본능적인 차원이 아닌 의도적인 치원에서의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필요하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다. 기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자녀 관계에 제한된 행위이다. 자녀는 강요나 의무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서 기도를 한다. 자녀는 아버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 하루는 세베대의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왼편 에 하나는 오른편에 앉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요구에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고 하셨다.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의 무죄한 피값에 대한 책임을 묻자 무지한 군중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불러 오는지를 모르고 소리질렀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 생명을 위해 구하고 있는가 사망을 위해 구하고 있는가 축복을 위해 구하고 있는가 저주를 위해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결정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지 이론적 타당성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과 자신의 뜻에 따라 구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과 축복이다. 인간의 육적 생각은 타당성과 합리성을 갖고 있어도 사망이다. 

필요 발생의 이유 – 인생에 필요가 왜 발생하는가 부족함이 왜 발생하는가? 인생의 광야는 물도 양식도 길도 없는 곳이다. 당연히 비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소유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통하여 존재적 비움과 낮아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소유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통해 존재적으로 비어지고 낮아지게 하시는 목적을 갖고 있다. 소유적 비움으로 존재적 비움을 의도하시는 것이다. 

필요 발생의 이유 – 소유적 부족 상태에 있게 되면 소유적 채움에 집중하게 된다. 하나님은 소유적 부족 상태를 통하여 존재적 비움을 원하시는 것이다. 존재적 비움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채우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비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낮추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얼마나 주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구하는 순서 – 문제 해결 순서는 문제 발생 순서와 같다. 소유 문제 발생은 존재 문제 발생이 원인이 된다. 존재 문제가 소유 문제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해결에 있어서도 존재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만 소유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마6:25에서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며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냐’ ‘먼저 그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라’는 분명히 존재 문제가 소유 문제보다 전제된 근본적인 문제임을 말하고 있다.

구하는 순서 – 존재 문제인 믿음에 의해서 소유 문제인 산이 옮겨지는 것이며 존재 문제인 순종에 의해 육신적 상황에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존재)하면 들에서도 성읍에서도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몸의 소생과 짐승과 우양의 새끼가 복(소유)을 받는다. 십일조가 소유 문제인가 존재문제인가 말3:7-12까지 보면 여호와를 떠난 증거가 하나님의 물질적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십일조이다. 

구하는 자세 – 기도의 결론이 11절이 아닌 12절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대접의 상대가 누군가 두가지 상대가 있다. 율법의 집약인 십계명의 내용이 하나님 관계와 인간 관계이며 산상수훈과 주기도문이 하나님관계와 인간관계를 말한다. 나에 대한 남의 대접이 내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 대한 나의 대접이 나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구하는 자세 – 원수를 미워하는 율법적 기준에 반하여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아들이 된다고 하신다. 아버지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비추어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와 이방인의 차이는 원수에 대한 자세에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선인과 악인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