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과 죄인의 길

May 23, 2021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시 1:1-2

 

복 있는 사람과 죄인의 길(시1:1-2)

방향 결정– 출생하면서 인생의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의 시작은 길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다. 길은 두 가지이다. 천국 길과 지옥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 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 도로 상태보다 중요한 것이 길의 방향이다. 목표의 유무에 방향의 유무가 결정되고 방향의 유무에 방황의 유무가 결정된다. 방황 없는 시간이 길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고 방황하는 시간이 길수록 실패의 확률이 높아진다. 같은 시간의 소요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방향에 있다.

방향(기준) 결정의 함정 – <유사성>기준 결정의 주의 사항이 있다. 유사한 기준과 같은 기준은 다른 기준이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다르다. 신앙 생활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일치하는가 비슷한가의 문제가 있다. 예수를 아는 것과 믿는것은 다르다.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유사하게 보는 착각과 성령의 인정과 체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과 일치가 아니라 유사한 것은 진리도 하나님의 기준도 아니다. 

방향(기준) 결정의 함정 -- <근소성>근소 하다는 것은 차이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지 차이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차이가 없어야 한다. 차이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유무의 문제다. 방주의 건조 명령의 첫째가 재료를 잣나무로 하고 마지막 마감을 역청으로 안팎에 칠하라는 의미는 재료와 재료 사이의 틈을 메워 완벽한 마감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틈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틈의 유무의 문제라는 것이다. 

방향(기준) 결정의 함정 -- <급한 것과 중요한 것> 매사의 우선 순위는 급한 순서가 아니라 중요한 순서이다. 그 순서는 해결 순서이며 축복의 순서, 성공의 순서이다. 급한 상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선 순위를 어기는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급하다고 먼저 한 일을 중도에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은 방향을 바꿀 수가 없다. 당초의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선악과 실수가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지옥으로 향하게 했다. 

방향의 진행과 동행 선택 – 인생은 독자 인생이 불가능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생은 공동체가 숙명이다. 공동체와 분리는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 필수적으로 동반자 선택의 문제가 등장한다. 배우자 선택, 직장 선택, 교회 선택의 중요성은 동반자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이 나의 선택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복된 만남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만남이 이루어 져야 한다. 

두 가지 동행(의인 동행, 악인 동행) – (상대적인 의) 고의적 자의적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신적 선택의 악인의 동반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주의할 사항이 있다. 요8:7의 주님의 말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여인을 범죄 현장에서 끌고 올 때는 모두들 자기들이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악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상대적인 선과 악의 규정은 무의미하다.

두 가지 동행(의인 동행, 악인 동행) – (자기 정당화) 마5:48에 ‘하늘의 너희 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원수에 대한 복수를 정당화하는 우리에게,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공평하게 비와 해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은 어떻게 조건에서도 선이고 악은 어떤 조건에서도 악이라는 말씀이다.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두 가지 동행(의인 동행, 악인 동행) – (동질화) 남에 대한 비판을 금하는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비판하는 사람이 비판 받는 사람보다 더 큰 허물과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남의 눈에는 티가 있지만 나의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이다. 악인의 형통함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는 시37:7-8을 참고해야 한다. 악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나 자신까지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악인 통한 연단 – 악인을 붙이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악인을 통해 의인을 연단하여 복의 통로로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 열방을 위한 복의 통로로 쓰기 위함이다. 연단은 가족 관계에서 동료 관계에서 교우 관계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상대의 변화에 앞서 자신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연단 순서는 악인을 통해 의인을 연단하고 믿음 없는 자를 통해 믿음있는 자를 연단한다. 그후에 악인을 변화시키고 믿음 없는 자를 변화시킨다. 

하나님과의 동행 – 필연적인 인간관계의 동행에 우선하는 동행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처음부터 의인과 죄인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악과 이 후 한사람도 예외없이 죄인으로서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의 길을 가고 있다. 구원의 결과는 하나님과 동행의 회복에 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과 일체된 삶이다. 하나님과의 일체는 나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경영 되어지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