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

Apr 04, 2021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24:1-6

 

 

 

무덤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눅24:1-6)

죽음의 필수성 – 예수님은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다. 두 강도의 죽음은 죄의 결과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죄의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같은 장소에서의 죽음이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죄인인 모든 인생은 죄의 결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생의 죄를 해결하여 구원하기 위해 지신 십자가 죽음이다. 두 강도처럼 인생은 구원받고 죽은 죄인과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죄인이 있게 된다. 

무덤의 상황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향품을 가지고 찾아온 무덤은 예상했던 상황이 아니라 예상 못했던 상황이 목격된 것이다. 인생은 두 가지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예상했던 상황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예상했던 상황(이해할 수 있는)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상대로 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예상대로가 아니라 그의 말씀대로 하신다는 의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세 – 예상하지 못한 상황,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당황하고 놀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대 이하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하나님의 계획이 연계되어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인간의 예상을 뛰어 넘는다. 기대 이하는 없다.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이해 가능한 경우보다 이해 불가능한 경우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차원의 계획과 예비하심이다.

무덤은 끝이며 시작이다 – 무덤은 성공적으로 살았든지 아니든지 행복하게 살았든지 아니든지 인간의 끝이다. 모든 인생은 무덤에서 끝난다.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여전히 예수님의 시체가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다. 부활하신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끝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시작인 것이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구원은 죽음으로 끝난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바꾸어 주신 기적의 역사다. 

무덤에서 근심한 여인들 – 목격한 무덤의 상황(시체가 없는)으로 인하여 여인들은 놀라고 근심한다. 예상치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응과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의 믿음이다. 당면한 상황에 대한 자세가 나의 믿음을 말해준다. 상황을 믿는 믿음인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지 확인된다. 상황을 믿는 것은 불신자의 태도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상황에 영향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상황에 영향 받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상황을 믿는 믿음은 죽은 믿음, 없는 믿음이다. 시체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를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죽은 믿음의 무덤에서 살아있는 예수를 찾을 수 없고, 불신의 무덤에서 예수를 찾을 수 없고, 불평과 원망의 무덤에서 예수를 찾을 수 없다. 불순종의 무덤에서 축복을 찾을 수 없고 감사가 죽은 원망의 무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기도가 죽었는데 응답이 살아 있을 수 있는가? 순종이 죽어 있는데 어찌 축복이 살아 있겠는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없다. 불신앙의 무덤, 절망의 무덤, 원망의 무덤, 불순종의 무덤 안에는 예수님이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덤은 죽은 자가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자는 무덤 안에 있을 수 없다. 예수가 있는 사람은 감사 가운데 순종 가운데 소망 가운데 기쁨 가운데 있게 된다. 

무덤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 하나님이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내 믿음이 살아 있으면 상황을 초월하여 얼마든지 구원하신다. 하나님이 축복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순종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내 순종이 살아 있으면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얼마든지 축복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응답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기도가 살아 있으면 상황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응답하실 수 있다. 

말씀을 기억하라(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는가?) –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있는 증거는 그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말씀은 언어가 아니다. 요1:1-3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한다. 말씀이 내 안에 없으면 하나님이 내 안에 안 계신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다. 

내 안에 계신 말씀(하나님)이 내 밖(상황)에 역사하신다 – 무덤 문이 열렸기 때문에 시체가 살아난 것이 아니다. 시체가 살아 났기 때문에 무덤 문이 열린 것이다. 상황이 살아 났기 때문에 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나야 상황이 살아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내 신을 주어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게 하여 곡식을 풍성케 하고 기근을 임하지 않게 하리라(겔36:2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