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사는 방법

Dec 13,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행 20:22-24

 

 

후회없이 사는 방법(행20:22-24)

후회와 인생 – 사람은 과거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실수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삶의 향상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비인격적 피조물과 다른 점이다. 결국 후회하는 인생이 있고 후회없는 인생이 있게 된다. 한번 뿐인 인생을 후회없이 살기 위한 확실한 기준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절대 진리가 있어야 한다. 그 절대 진리가 성경이다. 성경만이 후회없는 인생의 절대 비결을 가르쳐 준다. 

후회한 인생 – 사울왕은 비록 왕이었으나 하나님보다 사람(골리앗)을 두려워하고 다윗에 대한 시기 질투를 극복하지 못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골리앗 역시 거인의 체격과 막강한 무장을 하고 어린 다윗과 싸우러 나오는 비열하고 구차한 인생으로 후회스런 최후를 맞이 한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 욕심 때문에 살인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누구보다 월등한 조건에 있으면서 구차한 말로를 걷는 사람이 많다. 

무슨 일을 만날는지 – <미래 인식과 대책>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미래를 알아야 하는데 인생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는 한계 내지 무지에 있다. 후회하는 사람의 한결 같은 고백이 이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인생의 결과를 알 수 있었으면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확실히 확인되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에 매여 있느냐이다. 심령이 성령에 매여 있던 바울의 고백은 현재 매여 있는 것이 미래를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성령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하시나 – <미래 인도> 나는 모르지만 나를 붙잡고 계신 성령은 나의 미래를 알고 계신다. 진로를 결정할 때마다 환경과 상황의 조건을 선택 기준으로 하는가 아니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준으로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했지만 생계문제 해결에 앞서 남편과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는다. 환경적 조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 기준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나의 달려갈 길(복음 증거하는 일) -- <목적과 방향> 내가 가는 길이 사는 길이냐 죽는 길이냐, 성공이냐 실패냐, 흥하는 길이냐 망하는 길이냐는 인간적 기준이 아니라 사명의 방향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사명과 무관한 길은 아무리 성공해도 의미 없는 일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사명에 따라 죽는 길이 사는 길이 되고 사는 길이 죽는 길이 된다. 가는 길은 언제나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생명의 길 아니면 사망의 길, 성공의 길 아니면 실패의 길을 간다. 

주께 받은 사명 – <사명의 기원>사명을 말하면서 위임 권위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거취를 쉽게 옮기는 사람은 사명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사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사명 받은 사람의 기본 자세는 위임 권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한다. 나의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한 자세 그대로 윗 사람에게 복종한다. 사명의 출발은 순종과 복종이다. 모든 실패의 핵심적 원인은 불순종에 있다. 인류 최초의 죄가 불순종이었다. 

마치려 함에는 – <사명의 완수>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시작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작한 후에 추진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동시에 마지막에 마무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시작은 거창했으나 마무리가 지지부진한 경우를 많이 본다. 마무리가 안되면 영원히 미완성에 머물러 있게 된다. 완성 검사가 없는 건물은 불법 건물로 사용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법정 기한을 넘기면 철거 대상이 된다. 기한 전에 마무리 되어야 한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 예수님이 망대 건축과 전쟁 준비 예화를 통하여 착수하기 전에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제자들에게 희생의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물으신 적이 있다. 사명을 감당하기로 한 사람은 필수적으로 희생의 각오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명 완수를 위해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결단을 선포한다. 

인생은 ALL IN이다 – 인생을 살아 가는 시간에 따라 정비례하여 수명이 소진된다. 수명의 소진은 감당하는 일의 크고 작음에 구분 없이 동일한 분량의 수명이 소진된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며 인생을 살았든지 결국에는 수명이 다하여 생이 종료된다. 최선을 다하여 가치있는 목적을 위해 살았다면 수명을 생산적으로 사용한 것이 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거나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살았다면 수명을 낭비한 것이다. 누구나 수명을 사용한 결과를 맞이한다. 후회 여부와 함께.

후회의 시간적 길이 – 어떻게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기회가 더 주어지거나 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 사용 내용에 관계없이 기회는 동일하게 한번 뿐이다. 모든 사람이 단 한번의 기회를 살고 삶을 마감한다. 유한한 인생의 기회는 유한한 기회가 아니라 영원한 기회가 된다. 육신의 기간이 끝난 후 영원한 시간이 시작된다. 육신의 시간의 결과가 영원한 시간으로 연결되어 지속되어지게 된다. 짧은 수명의 결과가 영원한 시간의 결과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