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복, 주실 복

Nov 22,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신 16:12-17

 

 

주신 복, 주실 복(신16:12-17)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 – 절기의 의무는 구원받은 것(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에서 기인한다. 절기 준수의 전제는 주실 복과 주신 복이다. 구원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매주 드리는 제사를 비롯하여 무교절(유월절), 칠칠절(맥추절), 초막절(수장절)을 의무적으로 드려야 한다. 구원받은 삶은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는 삶이다. 주신 복(현재의 복)이 있고 주실 복(미래의 복)이 있다. 

주신 복(현재의 복) – 현재의 복은 확보 시점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과거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하심이다. 과거의 삶의 현장에서 축복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고 그 결과가 현재 시점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미래의 복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복은 확보 시점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다. 현재 복을 확보해야 미래에 확인이 되는 것이다. 현재 확보하지 못하고 미래에 당도하면 이미 기회가 지난 후가 된다. 

주신 복(출발과 계획) – 구원받은 삶의 축복적 특징은 시작은 저주였으나 나중에 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복으로 시작되어 복의 종착점에 도착하는 것이다. 복으로 출발하고 복에 도착하는 것이다. 구원이 영생에서 시작하여 영생에 도착하는 것과 같다. 죽음으로 시작하여 생명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시작하여 생명에 도달하는 것이다.  죄인이 사망에서 시작하여 사망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주신 복(복의 근거와 복의 확인과 확증) –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밖에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16:2,5) 하나님이 복이시며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며 나의 분깃이시다. 만물의 창조자시며 구원자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나의 복이시다. 그의 말씀이 복이다.(시119:56-57)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것이요,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확실히 분석하여 복의 원칙에 합당한 삶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실 복(미래의 복) – 미래의 복은 확보 시점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다. 현재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오늘 준비하지 못하면 미래의 복은 없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어도 준비 못한 사람은 미래가 없는 것이다. 내일을 위한 준비는 내일이 아니다. 오늘이다. 오늘만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오늘만이 기회라는 것은 지금 당장 실행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기회는 즉시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기회(복)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주실 복(복의 언약성) – <복의 기본성, 선재성>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최초의 말씀이 무엇인가?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다스리라’였다.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마지막에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을 칭조 하시기 전 인간을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신것이다. 인간보다 복이 먼저 있었고 인간의 출발이 기본적으로 축복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이미 준비된 언약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다. 

주실 복(복의 언약성) -- <무조건성, 조건성> 하나님의 복은 언약에 근거한다. 언약을 준수하는 사람은 개인적 실력과 능력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반대로 탁월한 실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경쟁력을 갖추었다해도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없다. 하나님의 축복은 여건과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이다. 

주실 복(복의 기준) -- <형편과 기준> 복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 시점에서 지킬 때 미래의 복은 확보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을 지킬 때 먼저 부딪히는 방해 요인은 형편과 사정이다. 언약을 지켜야하는 현실이 언약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딜레마가 모두에게 있다. 딜레마를 극복하는가 못하는가가 미래를 결정한다. 형편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 말씀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를 결단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을 증명한다. 

빈 손으로 오지 말라 –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의 세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빈손(손이 없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은 손을 안 가져온 것과 같다. 손이 필요치 않은 경우가 된다.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둘째, 부족한 손(한 손). 두 손을 다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다. 인색함과 억지로 최소한의 것을 가져온 사람은 두 손 중에 하나만 필요한 사람이다. 셋째, 넘치는 손(두 손). 많이 줄 때는 두 손 조차 부족하다. 두 손 가득히 드리는 마음은 넘치는 마음이다. 

드리는 것과 받는 것 – 누구나 받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것을 원한다. 받는 것이 있고 없고 많고 적은 것의 원인은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먼저 드렸느냐(베풀었느냐), 얼마나 드렸느냐에 있다. 인색하게 드린 사람은 인색하게 받고 풍성히 드린 사람은 풍성히 받을 것이다. 이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