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Oct 11,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고후 6:1-2

 

 

기회 (고후6:1-2)

기회는 만드는가 주어지는가? – 구원의 기회, 은혜의 기회는 구원받아야 할 인생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조차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구원에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삶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인류 역사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주관하신다. 일생 동안 한 순간의 기회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만들 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기회는 인생에게 생사의 기회가 되고 흥망의 기회가 된다. 

기회의 원인과 결과 – 현재는 과거의 시간 사용의 결과를 증명하고 현재의 시간 사용 자세는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기회를 포착했든지 못했든지 기회에 대한 자세의 결과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허락하신 기회는 결과가 예정되어 있다. 기도의 기회에는 응답이 예정되어 있고 순종의 기회는 축복이 예정되어 있다. 기도의 기회를 상실하면 응답의 상실을 확인하게 되고 기도의 기회를 활용하면 응답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순종 역시 마찬가지다. 순종의 기회는 축복의 기회가 예약되어 있다. 

기회의 특성 -- <현재성과 생명성> 기회의 생명은 현재에 있다. 현재의 기회는 살아있는 기회요 사용 가능한 기회이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회는 죽은 기회요 사용 불가능한 기회이다. 잃어버린 과거의 기회가 있고 오지 않은 미래의 기회가 있다. 사용 가능한 기회는 현재 주어진 기회 뿐이다. 현재 하나님께서 어떤 기회를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핑계하며 현재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생명도 현재성에 있다. 생명이 생명이 되려하면 현재 존재해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기회만이 기회이다. 

기회의 특성 -- <일회성과 연결성> 기회의 의미 자체가 일회적이다. 반복과 순환이 없다. 영원히 일회적이다. 인생의 모든 기회가 일회적이다. 출생도 유년 시절도 청년 시절도 노년 시절도 죽음도 일회적이다. 홍해 건너는 기회도 광야 통과도 요단강 갈라지는 기회도 일회적이다. 반복이 없는 일회적 기회는 독자적이면서 다음 기회와 연결성을 갖고 있다. 홍해 사건이 광야 기회와 연결되어 있고 광야 과정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과 연결되어 있다. 일회적인 기회가 앞의 기회와 또 뒤의 기회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완성한다. 

기회의 이중성 --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기회)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공존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없는 상황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빌립보 옥중에서 감옥을 나갈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 홍해를 가를 수는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 모든 기회는 언제나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포기하면 최악의 기회가 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최고의 기회가 된다. 홍해의 기회가 최악의 기회가 아니라 최고의 기회가 된 것은 할 수 있는 기도 때문이었다. 

기회의 충돌성 -- <사람의 기회와 하나님의 기회, 먼저 기회와 나중 기회> 기회를 어떤 기회로 보느냐의 기준과 시각의 문제가 있고 두 가지 용도 중에 어느 용도를 우선적인 용도로 보느냐의 문제가 있다. 제자를 자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공통점이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일과 가족과 작별하는 일, 예수를 따르는 일과 부모 장례를 치르는 일, 예수를 따르는 일과 재산을 정리하는 일등이 충돌을 일으킬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선순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 따르는 일을 포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기회의 양면성 – 기회는 양면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최초(처음)와 최후(마지막)라는 상반된 특징이 기회 안에 공존하고 있다. 기회는 반복이 불가능하고 일회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회가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인생의 특징과 같다. 인생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살고 있다. 씨의 존재와 같다. 시작할 때(파종 때)는 씨라고 부르며 끝에 추수할 때는 열매라고 부른다. 씨와 열매는 같은 존재에 대한 다른 명칭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의 존재이며 마지막의 존재이다. 모든 인생은 처음 인생을 살고 마지막 인생을 사는 것이다. 

기회에 대한 자세 – 신약 성경에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에 바디메오외에도 많은 소경이 있었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사람은 바디메오 뿐이다. 예수님은 바디메오만을 찾아가신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특정인을 겨냥하신 것이 아니다. 바디메오의 자세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갈수록 치열하게 부르짖었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소리질렀다. 체면도 자존심도 던져 버리고 예수님이 지나칠 수 없도록 소리질렀다. 문제는 예수님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도록 소리지르는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