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과 믿음

Aug 30,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요 6:5-10

 

계산과 믿음(요6:5-10)

큰 무리(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 인생이 궁극적으로 찾아 가야 할 분, 만나야 할 분이 누구인가? 사람들이 나름대로 성공을 위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동분서주 한다. 그토록 바쁘게 찾아 다녔지만 완전히 해결한 사람은 없다. 벳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배고픔이다.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이 있는 광야 자체가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인생은 광야이다. 출애굽 후에 40년간 머물렀던 광야와 벳세다 들판이 같은 광야이다. 광야에서 유일한 살 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만 생존이 가능하게 된다. 

문제의 역할(확인성) – 광야의 상황은 두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에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 가감없이 알게 된다. 인간 자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로서 한줌의 흙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하나님은 만물과 인생을 만드시고 모든 피조물의 생존을 위해 공급자가 되심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 나아 온 큰 무리는 예수님의 필요를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 때문에 나아 온 것이다. 

문제를 보는 시각 – <인간의 계산, 하나님의 말씀> 오천 명의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립에게 대책을 물으셨다. 빌립은 계산적 대책을 내놓았다. 오천 명을 위해서만 2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했다. 문제를 인간의 계산적 기준으로 본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반대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2백 데나리온이 아니라 오병이어로도 충분히 해결책이 된다. 인간의 방법은 천문학적 계산의 물질이 있어도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의 기준의 시각과 하나님의 기준의 시각이 있다. 

문제를 보는 시각 -- <문제와 숙제>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는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각에 따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인간적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은 반대 시각이다. 영의 생각과 육의 시각은 반대 시각이다. 문제 해결은 문제로 보지 않고 숙제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전제하는 시각으로 볼 때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 사람의 모든 상황은 만물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인생의 걸림돌 역할과 디딤돌 역할이 그것이다. 

오병이어의 두 가지 의미 – 오병이어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끼 양식이었다. 최저 수준의 식사였다. 사렙다 과부의 한 움큼의 가루와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식사, 인간의 한계, 능력의 끝을 의미한다. 불가능과 절망의 증거였다. 그러나 소년의 손에서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졌을 때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이요 희망의 시작 축복의 시작이 되었다. 동일한 오병이어가 보는 기준에 따라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와 끝의 증거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가능성과 능력의 시작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끝이나 시작이냐 절망이냐 희망이냐 -- 같은 상황이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믿음의 근거 – 믿음이라고 하면 모든 믿음이 같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아님에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의외로 많다. 빌립의 믿음과 안드레의 믿음이 같은 믿음이 아닌 이유는 믿는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빌립은 자신의 계산을 가능과 불가능의 기준으로 삼았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기준으로 했다. 계산을 기준으로 하는 믿음은 문제 규모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진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믿음은 문제의 규모에 따라 가능성 여부가 달라지지 않는다. 너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전2:5)

문제 해결을 위한 사용 요소 –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심에 있어 필수적으로 인생을 사용하신다. 인생 문제는 사람 문제와 물질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과 물질을 사용하신다. 사람을 사용하시되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믿음의 사용은 순종을 말한다. 순종의 수단이 필요하다. 그 수단 중에 중요한 수단이 물질이다. 물질이 순종의 수단으로 필요하다. 사람의 믿음을 사용하시고 물질적 순종을 사용하신다. 조건의 호불호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 하나 100%의 신뢰, 100% 순종을 원하신다. 수량과 규모가 아니라 100%여야 한다. 

내 인생의 사용자 – 나와 나의 가진 것을 내 자신이 사용하는가 하나님이 사용하는가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오병이어를 내가 사용하면 한끼 식사로 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오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넘치는 식사의 시작이 된다. 사르밧 여인의 가루 한 움큼도 내가 사용하면 마지막 식사가 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기근이 끝나도록 끝나지 않는 식사가 된다. 모세의 지팡이도 모세 자신이 사용하면 양 떼를 인도하는 생계 수단에 불과 하지만 모세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으면 자신 뿐만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