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형통 ① (신통:神通)

Aug 09,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창 39:1-3

 

 

세가지 형통○1(신통: 神通) (창39:1-3)
이끌려(인도) – 본문이 “요셉이 이끌려”로 시작된다. 인생의 숙명적 특징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끌려”는 피동적 수동적, 타의적 이라는 뜻이다. 인생을 이끌어 가는 존재가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것이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가 있다. 믿는 사람은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믿는 삶도 두 가지 삶이 있다. 하나님 앞에 가는 삶과 하나님 뒤에 가는 삶이 있다. 앞과 뒤의 차이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하나님 뒤에 가는 사람은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지만 하나님 앞에 가는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관계없는, 길이 없는 삶이다. 
내려가매(방향) –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내려가는 방향이다. 본격적인 인도하심의 시작이 내려가는 것이었다. 인간적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인도하시고 있다. 올라가기 전에 먼저 내려가게 하신다. 성공하기 전에 실패하게 하시고 승리하기 전에 패배하게 하신다. 부유하게 하시기 전에 가난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특정 방향만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인도하시지만 반드시 지켜 할 방향은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는 방향이다. 모든 사람이 옳은 방향이라 해도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향이 아닌 것은 틀린 방향이다.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 하심은 반드시 보이는 손길을 통해서 나타난다. 알지도 못했던 이스마엘 사람의 손과 보디발의 손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 역할을 한 것이다. 인류 역사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손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진행하신다. 내가 연단 받아야 한다면 연단하는 사람의 손이 나를 연단하고, 내가 못박혀야 한다면 못박는 사람의 손이 나를 못박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필요하면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 하리라”(삼하7:14)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손에서 사람의 손으로 이어져 나를 인도하신다. 
보이는 손, 보이지 않는 손 –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은 육신을 가진 인간이다. 육신적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역사하신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이는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가 중요하다. 보이는 것을 육신적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보이는 SIGN을 보고 보이지 않는 SIGN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 형통의 본질이 환경과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다. 형통한 환경과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가 형통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시점을 애굽에 왔을 때에 맞추어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편재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이고 계획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편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나에게 임재하신 것을 말한다.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이 지금 내 삶 속에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냐 이다. 
형통한 자가 되어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순간 형통한 자가 된다. 형통(성공)할 것이다가 아니라 형통했다는 것이다. 예정된 형통이 아니라 확정된 형통이다. 승리할 것이다가 아니라 승리했다. 복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복 받았다. 미래에 예정된 구원, 승리, 형통이 아니라 현재 완료된 승리, 구원, 형통을 말한다. 하나님 자체가 완전한 자, 완성자이시다. 그 분은 예정과 결정, 미정과 확정의 구분이 필요치 않고 차이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분의 모든 것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인간적 사고의 방식이 현재와 미래, 미정과 결정, 예정과 확정을 나누는 것 뿐이다. 보이는 현재만 확실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도 확실한 것이다. 
형통 시점 – 성경이 요셉을 형통한 자로 확정하는 시점이 중요하다. 상식적인 이해는 모태 신앙인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시점은 태어날 때부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심을 정식으로 언급하는 시점은 애굽에 왔을 때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보디발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확정된 것이다.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보디발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확정된 운명이 있다. 노예로서의 신분과 삶이 시작된다. 성경은 그 시점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시작 시점으로 하고 있다. 
형통의 본질 – 형통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나의 환경과 상황이 잘되게 하시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적 형통이 근본적이다. 나의 존재적 형통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과 형통한 상태에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와 명령이 나의 순종과 복종을 통하여 막힘 없이 실행되고 있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전혀 막힘없이 말씀이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이 나를 관통하여 나의 삶의 현장에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나의 뜻이 하나님께 관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관통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