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의 씨름인가?

Aug 02,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창 32:22-28

 

 

누구와의 씨름인가?(창32:22-28)

홀로 남은 야곱 – 형 에서를 피하여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을 찾아 가던 야곱은 홀로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여 요단을 건넜었다. 20년전 빈손으로 요단을 건넜던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또한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시 홀로 빈손이 되었다. 얍복의 의미가 ‘비워짐’(Empty)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인생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곱은 20년 전의 빈손으로 돌아간 결과가 되었다. 20년 동안 이룬 성공을 자신의 손으로 강 건너로 다 보내고 홀로 남아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하게 된 것이다. 

씨름의 목적 – 20년 간의 씨름은 소유(물질) 문제를 위한 라반과의 씨름이었다면 얍복 나루에서의 씨름은 에서의 위협으로 인한 존재 문제를 위한 천사(하나님)와의 씨름이었다. 소유적 성공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다. 존재적 성공은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사람은 두 가지 씨름을 하게 된다. 소유를 위한 씨름과 존재를 위한 씨름을 한다. 생존경쟁은 다른 사람과의 씨름이다. 생존을 위해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 소유 문제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존재 문제이다. 소유 문제가 존재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신 할 수가 없다. 

씨름의 상대 – 소유 지향적 삶은 이해관계로 인한 씨름으로 다른 사람과의 육신적 물리적 씨름이 필연적이다. 존재적 씨름은 존재 위기로 인한 씨름으로 사람과의 씨름이 아닌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소유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손에 달렸지만 존재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렸다. 에서의 위협으로 인한 존재 위협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생사 화복의 결정권자인 하나님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남과의 씨름과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공통된 당사자는 나 자신이다. 다시 말해 최종적인 씨름은 자신과의 씨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씨름 – 존재 문제는 에서(사람)와의 씨름이 아니다. 관계된 사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손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하나님께 있는 것과 같이 인간관계 역시 그렇다. 사람과의 씨름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른 사람의 문제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전에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고 반드시 나를 이겨야만 한다. 남을 이긴 것이 궁극적 승리가 아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하나님과의 씨름 – 에서의 위협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는 야곱은 하나님과 필사적인 씨름을 해야만 하게 되었다. 씨름의 결과는 야곱의 원하는 바와는 달리 정반대였다. 붙잡아 달라는 요청과 달리 놔 버리셨고, 세워 달라는 요청과 달리 무너뜨리셨다. 일으켜 달라는 요청과 달리 쓰러뜨리셨다. 강하게 되기를 원했으나 약하게 만드시고, 잘되기를 원했으나 안되게 하셨다. 살려 달라고 했으나 죽게 하셨고, 더 많게 되기를 원했으나 오히려 빼앗아 가셨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신 이유는 자아를 깨뜨리고 자기의를 무너뜨려 존재적 변화를 원하신 것이다. 

자신과의 씨름 – 야곱의 환경과 상황을 무너뜨리신 것이 아니라 몸의 기둥 역할을 하는 환도 뼈를 치신 것은 야곱의 자아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결국 인생은 객관적 상황과 상대와의 씨름에 앞서 자신과의 씨름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객관적 상황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서 세상을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신의 불순종을 이겨야 순종할 수 있고 불평과 원망을 이겨야 감사할 수 있다. 게으름을 이겨야 근면할 수 있다. 교만을 이겨야 겸손할 수 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22:4)

자신과의 씨름 – 씨름하던 천사는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야곱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포기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인생의 씨름은 보이는 상대와의 씨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보이는 상대와의 씨름에서 이긴다 해도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이긴 것인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해결된다. 하나님을 만나면 결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과 세상 것,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최종적인 결단을 요구하신다. 세상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다. 따라서 최종 선택은 하나님이냐 나 자신이냐 둘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결단이다. 

씨름의 종료 – 환도 뼈가 부러져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야곱의 자세는 죽을지언정 놓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의 증거였다. 그 때 사자가 야곱의 이름을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나님의 사자와의 결사적인 씨름의 결과는 이름이 바뀌는 것이었다. 이름의 바뀜은 존재의 바뀜이다.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야곱은 없어지고 이스라엘로 새로 출생한 것이다. 소유의 변화가 인생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가 인생의 변화이다. 진정한 성공은 소유적 성공이 아니라 존재적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