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갑족속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

Jun 07,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예레미야 35:16-19

 

레갑 족속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렘35 : 16-19)

하나님의 상반된 선포 – BC 605년 바벨론의 침공이 임박한 때에 유다 민족과 레갑 족속에 대한 상반된 말씀이 주어진다. 유다 민족은 바벨론에 의한 멸망이 선포되고 레갑 족속에게는 자손 대대로 제사장 역할을 맡기시겠다는 축복의 선포가 주어진다. 소위 택함 받은 백성인 유다 백성은 버림 당하는 재앙이 주어지고 이방인이며 소수 민족인 레갑 족속은 축복이 주어진다. 같은 상황과 환경에서 상반된 하나님의 결정을 보게 된다. 축복의 결정 저주의 결정, 성공의 결정 실패의 결정, 승리의 결정 패배의 결정의 운명으로 달라진다. 

선조의 명령을 지키는 레갑 족속 –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레갑 족속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시험을 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주를 거절한다. 이유는 조상의 명령 때문이었다. 레갑 족속의 선조 중에 요나답(여호나답)이 후손에게 포도주를 금하였으며 장막 생활을 할 것과 파종과 포도원 소유와 파종을 금했다. 조상의 명령을 250년간 충실히 지켰던 레갑 후손의 신앙을 통해 유다 백성의 강팍한 신앙을 책망하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수 민족인 레갑 족속은 250년 간 조상의 명령을 지켰다. 

광야 생활 방식 – 레갑 족속은 광야 생활 형태의 유목 생활을 고수했다. 정착된 주거 생활이 아닌 장막 생활을 하며 파종과 포도 재배를 통해 인위적인 부요를 추구하지 않고 포도원 소유를 금하여 땅의 소유를 배제했다. 광야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신본주의 신앙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광야 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생존이 가능했다. 아합 왕 시절 3년반 기근 동안 엘리야의 생존이 오직 하나님의 공급에 의존해야만 했던 것과 같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공급이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가나안 생활 방식 – 가나안 생활은 육신적 물질적 가치관의 바알 우상 문화의 삶이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은 물질 추구와 쾌락 추구의 삶이다. 하나님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가치와 형태의 삶이다. 포도주(술)에 취하는 쾌락추구, 포도원 재배와 파종으로 물질적 부요추구, 안정된 주거확보로 육신적 안일함에 안주하는 가나안 방식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문화이다. 이것을 익히 목격한 요나답은 후손에게 광야 생활 방식을 명령했던 것이다.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한 유대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세속적인 삶으로 변질 되어 갔다. 

인생의 기본질서 – 선조의 명령에 대한 레갑 족속의 절대 순종과 복종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부모에 대한 절대 순종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레갑 족속은 요나답의 명령이 있은후 250년 동안 한결같이 명령을 준행했다. 이것은 부모에 대한 절대 순종과 복종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250년 전에 주어진 선조의 훌륭한 신앙의 유산이 대대로 물려지기 위하여는 세대 마다 부모와 자녀의 순종의 질서가 필수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 도리와 질서가 있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본자세이다. 

방식의 중요성 – 삶의 방식을 구분 하면 성경적 방식의 삶과 세상적 방식의 삶으로 나눌 수 있다. 성경적 방식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목적이 삶의 목적이 된다. 세상적 방식의 삶은 인간의 자기 의가 기준이 되고 육신의 목적이 삶의 목적이 된다. 하나님의 기준과 목적과는 정반대의 삶이 된다. 생명과 축복의 삶은 하나님의 기준과 목적에 의한 삶에서만 가능하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목적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가치 기준과 목적을 보면 미래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방식의 중요성 – 방식은 그릇과 같고 틀(Form)과 같다. 그릇에 무엇을 담든지 내용물의 형태는 그릇의 모양을 갖게 된다. 신앙 생활에 있어 방식의 중요성은 어떤 형태의 신앙 생활을 하는가를 결정하고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가를 결정한다. 원형의 방식은 원형의 삶을, 삼각형의 방식은 삼각형의 삶을, 사각형의 방식은 사각형의 삶을 살게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중요한 사명이 빛과 소금 역할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 시켜야 하는 필연성은 세상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바꾸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 살전5:19-22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성령을 소멸치 않고 예언(말씀)을 멸시하지 않는 실제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를 악의 모양을 버리라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문화, 생활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정신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다. 방식과 습관을 바꾸는 것은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방식과 습관이 바뀌면 그 속에 담긴 정신과 마음이 바뀌게 된다. 예배 드리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말씀을 경청하는 습관에 의하여 우리의 영과 혼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