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과 잃은 것

Mar 29,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16 : 24-27

Download audio file | Open in a popup window

얻은 것과 잃은 것(마16 : 24-27)

얻은 것과 잃은 것 – 기업들은 정기적인 경영평가를 위해서 대차대조표(손익 계산서)등을 작성한다. 경영 평가의 중요 핵심 정보는 손익의 문제다. 그리고 그 원인에 있다. 흑자 여부와 그 원인, 적자 여부와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수이다. 과거의 결과에 대한 평가의 중요성은 미래를 위한 결정 때문이다. 경제적 평가와는 차원이 다른 평가가 있다. 영적 평가이다. 질병 재앙으로 인한 경제적 환난의 풍랑 가운데서 풍랑 만난 제자들의 믿음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믿음이 적자였나 흑자였나? 믿음의 계산서에 나타난 결과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얻은 것과 잃은 것 –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있다.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 한다. 필요 확보에 불로소득은 없다. 상응한 대가 지불이 필연이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값진 진주 비유 모두 같다. 얻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목숨의 영원한 보존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지불했는가? 나의 목숨을 다 지불해도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없다. 예수의 생명과 나의 생명을 바꾸어야 한다. 

목숨의 사용 목적 – 목숨이 소멸 하느냐, 사용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목숨은 두 가지 대상을 위해 사용된다. 나를 위해서, 또는 예수를 위해서가 있다. 소멸로 끝나는 것이 있고 영생하도록 보존하는 것이 있다.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목숨을 낭비한 것이다. 목숨을 영생 보존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위해 사는 것만이 목숨을 사용한 것이다. 목숨의 영존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멸되는 수고, 소멸 되지 않는 수고 – 가치를 알고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는 영혼을 가진 사람뿐이다. 가치는 영적 가치와 육적 가치, 절대 가치와 상대 가치, 영구적 가치와 일시적 가치가 있다.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의 차이는 가치 추구에서 다르다. ‘땅에 것을 구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구하라,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영생의 사람은 일시적인 것, 땅에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목숨의 가치 –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목숨의 가치는 얼마나 되나? 믿지 않는 사람의 존재 목적은 물질 추구에 있다. 그리고 목숨보다 못한 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생을 마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목숨은 천하의 모든 물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은 예수를 위하여 물질을 소모하고 시간을 소모하고 일생을 소모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깨닫는다. 어느 삶이 지혜로운 삶이었는지. 

다 얻는 삶 다 잃는 삶 – 얻는 것과 잃는 것은 필수적인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얻기 위해서 잃어야 할 것이 있고 잃는 것을 각오해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결론적으로 다 얻든지 다 잃고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천하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사용한 삶은 천하도 목숨도 잃고 삶을 끝나게 된다. 영생을 얻기 위해 목숨을 사용한 삶은 현세도 내세도 다 얻는 삶을 산 것이다. 

자기 부인 – 누구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시인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을 보존하느냐 상실하느냐가 결정된다. 예수님 앞에서다. 예수님 앞에서 누가 주인이냐를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인지 예수님이 주인인지 시인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관계를 말한다. 내가 주인이었던 인생에서 주님이 주인인 인생으로 바뀌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은 실제적 변화가 증명한다. 주인의 변화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느냐 안바뀌느냐에 구원의 실제성이 증명된다. 

밖에 계신 예수, 안에 계신 예수 –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느냐 밖에 계시느냐의 문제가 구원의 문제라고 하면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는 상황도 두 종류가 있다. 주인이 누구냐이다. 예수님이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누가 내 인생을 지배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한다. 내가 주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상태를 ‘자기의’이며 예수님이 주인의 권한을 행사하는 상태가 있다. 주인이 누구냐가 인생의 형통과 의미와 목적을 결정한다.  

 

자기 십자가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이다. 자기 부인이 적극적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목적은 자기가 죽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만 새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 부활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다. 부활은 죽은 사람에게만 해당된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다시 사는 것이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