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로 오라

Feb 23,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14:22-33

물위로 오라 (마14:22-33)

건너편으로 --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는 것은 제자들의 계획과 결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획과 결정이다. 하나님의 계획안에는 장소 이동 계획이 있고 장소 이동 계획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해당자에게 운명의 변화를 가져온다. 장소 이동의 해당자는 살아있는 자이다. 살아있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Plan이 작동한다. 

건너편으로 – 장소 이동은 숙명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시작은 반드시 끝에 도달하게 하고 출발 역시 도착을 피할 수 없고 출생은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의 필연적인 종착역이 있다. 죽음이며 그 죽음은 두 가지 종착역으로 인도한다. 천국과 지옥이다. 출생에 의해 시작된 삶의 도착지가 어디냐에 진정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물결을 인하여 –<인생의 바다와 파도> 바다에 파도(풍랑)가 존재하는 것은 정상이다. 파도(풍랑)가 없는 것이 비정상이다. 벧전4:12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시련과 시험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바다에 파도가 없는 때가 없고, 없는 곳이 없다.문제는 파도보다 극복 자세다. 

물결을 인하여 --<원인분석>본질과 비본질:원인은 보이는 원인과 힘은 비본질적인 것이며 보이지 않는 원인과 힘이 본질적인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보이지 않는 원인이다. 원인은 보이는 원인과 보이지 않는 원인 두가지가 있다. 보이는 원인의 해결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원인이 해결되어야 한다. 구원은 안보이는 죄의 해결이다.

물결을 인하여 --<원인분석>문제의 원인을 분석할 때 보이는 원인과 보이지 않는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각이 중요하다. 시각은 육적인 시각과 영적인 시각이 있다. 영적인 시각에 의해서만 보이지 않는 원인을 볼 수 있다. 뛰어난 지식과 두뇌라 해도 영적인 원인을 알 수 없다. 하나님(영적)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보이지 않는 원인을 알 수 있다. 

밤 4 경에 -- <절정의 시간>밤 4경은 새벽 3시에서 6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철야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가장 어둠이 짙은 시간이 해뜨기 직전의 시간이 육신적으로도 한계점에 도달한 피곤의 시간이다. 절망의 절정의 시간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상황의 공통점이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밤 4 경에 – 예수 만남(기회) : 예수님 만남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드신다. 구원의 기회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다. 만남의 상황도 내가 설정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설정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상황은 상황의 상태의 좋고 나쁨의 의무는 차이가 없다. 

밤 4 경에 – 예수 만남의 최고의 때가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상황보다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주님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최고의 상황이 아무 것도 안보이고 주님만 보이는 상황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죽음, 또는 죽음과 흡사한 상황에 있었다. 

바다 위로 --<하나님의 기적의 특징>땅 위를 걸었으면 놀랄 일도 아니고 기적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다 위로 걸어 오셨다. 인간의 상식, 지식, 경험으로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 자체이다. 상식, 지식, 경험으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이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인간의 상식과 지식 범주안에서도 밖에서도 역사하신다. 

바다 위로 --<두가지 예수> 바다를 배타고 건너는 예수 :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예수가 있다. 인간의 인식과 경험과 사고 테두리 안에서만 예수를 인정하는 인본적 신앙이 있다. 바다를 걸어서 건너는 예수 : 행하심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예수를 믿는 신본적 신앙이 있다. 

바다 위로 –<두가지 방법> 배타고 가는 방법을 인간적으로는 안전하고 완전한 방법이지만 걸어서 가는 방법은 불안한 불완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배타고 가는 방법은 인위적인 방법이다. 인위적인 방법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끝내 알게 된다. 걸어서 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행하심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배에서 내려 --<두가지 인생> 풍랑에 밟히고 풍랑에 침몰되는 인생이 있고, 풍랑을 밟으며 침몰이 불가능한 인생이 있다. 배를 의지하는 인생은 결국 침몰되고 예수를 의지하는 인생은 풍랑을 지배하고 이기는 인생을 산다. 인생의 바다에 풍랑은 필연적이다. 필연적인 승리와 패배가 있게 된다. 

배에서 내려 –바다를 건너는 방법은 세가지다. 배타고 가는 방법, 헤엄쳐 가는 방법, 걸어서 가는 방법 세가지는 믿을 수 있는 방법과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나뉜다. 그 중에 예수님은 믿을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믿을 수 없는 방법은 하나님만 가능한 방법이다. 구원은 하나님만 가능한 방법이다. 인생의 해결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