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

Feb 02,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 1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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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눅12:22-32)

하나님의 염려 해결능력 – 살아있는 존재에게 필연적인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믿을 때 구원의 확신과 함께 기본적으로 생계 문제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확보와 목적의 확립이 선행되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천국은 믿으면서 현실의 생계 문제는 의심한다면 이해가 안 되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천국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필수 관계 요소 – 성경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의 백성에게, 벳세다 들판의 굶주린 영혼들에게 하나님 관계, 인간 관계, 물질 관계 세가지 관계 속에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고 믿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거기에 반해 불신자가 알고 있는 관계는 인간 관계, 물질 관계 뿐이다. 오늘 본문은 생계 해결에 있어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불신자의 생계 해결의 불가능은 관계의 결여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 관계, 물질 관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 관계와 물질 관계의 문제 발생과 해결은 하나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질 문제에 대한 오해와 무지 – <물질의 필수성>에 대해 사람은 절감하고 있으나 하나님 입장은 다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이 더 잘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신다. <물질의 해결 대책>물질에 대한 대책을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숙명적 문제로 알고 있는 세상 사람은 물질에 대한 염려가 해결될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은 구원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 인생의 문제가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질 문제에 대한 오해와 무지 – <물질 소유권> 인간이 빠져 나올 수 없는 치명적 함정이 있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다. 물질 소유욕은 인간의 죄악의 뿌리가 된다. (딤전6:9-10) 물질에 대한 탐욕이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덫이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 속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질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피조물은 누구도 예외없이 소유권이 없다. 소유에 집착할수록 탐욕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질 뿐이다. 

물질 해결의 기본입장 -- <물질 소유권>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소유권에 대한 확인이 없다면 자칫 절도 행위가 된다. 하나님의 소유권을 모르는 무지가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침해를 너무 소홀히 했다. 소유권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물질 공급 문제 역시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공급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필요자는 인간이다. 헌금을 언급하면 부담 갖는 사람들이 있다. 헌금은 하나님의 필요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의 제물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나의 축복이 된다. 

물질 해결의 차별성 -- <목적성>물질 해결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에 있는가? 세상적 목적에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과 구원의 확장에 있다. 그러나 육신적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과 상반된다. <보장성>물질 공급의기회는 일반 은총에 의해 모든 피조물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다. 보편적 공급 기회의 부여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는 특별 은총에 의해 보장이 있다. <제한성>물질의 공급보다 중요한 것은 용도이다. 용도는 의로운 용도와 불의한 용도가 있다. 무한 하신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공급의 제한이 있다. 용도가 하나님의 의도와 부합 될 때 무한한 공급이 가능케 된다. 

물질 해결의 전제조건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물질 공급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하나님 나라 소속> 하나님의 나라 소속 여부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소속 여부가 공급 보장 여부를 결정한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나라의 통치자의 명령에 순종과 복종은 의무이며 사명이다. 명령은 육신의 생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나님 나라의 범위> 하나님 나라 범위는 보이는 현재에서 미래 안보이는 내세까지, 보이는 여기서부터 땅끝, 안보이는 천국까지이다.

염려의 특성 – 염려는 백해무익하다. 100% 해롭다. 1%도 도움이 안 된다. 염려는 무용지물이다. 100% 용도가 없다. 쓰레기와 같다. 불필요하고 오히려 치워야 하는 부담 뿐이다. 염려는 무능력 그 자체다. 염려의 용도는 철저히 마귀 용도이다. 마귀는 염려가 100% 유익한 도구이다. 모든 인간에게 유효하게 작용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특히 내일에 대한 염려는 가장 확실한 함정이다. 내일은 영원히 내일이다. 영원히 오지않는 내일에 대한 염려는 영원한 함정이다. 

염려와 믿음 – 염려와 믿음은 반비례한다. 염려가 커지면 믿음은 작아졌다는 증거이다. 염려가 작아지면 믿음이 커졌다는 증거이다. 생계 문제로 염려하는 인생을 향해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생계에 대한 믿음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믿음이다. 믿음의 유무와 변화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나타난다. 염려 걱정 근심 좌절, 반대로 평강 평안 확신 담대함 감사 기쁨 등이 나타난다. 

오늘과 내일 – 내일은 오늘에 달려 있다. 오늘 염려를 해결해야 한다. 내일 염려를 내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 내일을 결정한다. 내일은 내일을 해결할 수 없다. 내일은 영원히 내일이다. 오늘이 지나면 또 오늘이다. 반드시 오늘을 해결하는 사람만 염려가 해결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