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반전 (Reversal)

Jan 19, 202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고전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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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반전(고전1: 26-31)

불공평의 보편성과 필연성 –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은 고린도 인구 구성비(인구의 40%가 노예)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상류 계층의 교인도 있었지만 하류 계층이 더 많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고린도교회는 어려움이 많았다. 인생의 운명의 결정은 선택적인 요인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의 범위 안에 있다. 인생에 대한 결정권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 불공평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 

불공평과 자세 – 불공평의 이유는 차별화와 다양화에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불공평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부정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자세가 있다. 현실을 부정할 것인가? 긍정할 것인가? 현실에 대한 자세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현실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 갈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숙명성을 가진 현실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현장이라는 것이다. 

불공평의 공평성 – 실질적 평등과 형식적 평등이 있다. 과정과 단계, 수고와 노력을 무시한 무차별적 평등은 심각한 혼란을 자초하고 공동체 전체의 필연적 붕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노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성공이 동일한가 다른가? 순종에 관계없이 축복이 동일한가 다른가? 기도의 유무에 관계없이 응답이 동일한가 다른가? 구원이 믿음의 유무와 무관 한가? 심는 것에 관계없이 거두는 것이 동일한가? 

불공평의 순환성 – 유리한 상황과 불리한 상황이 각각 영구적으로 고착된 경우는 없다. 날씨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와 교체가 이루어진다. 유리한 상황이 반드시 유리한 것도 불리한 상황이 반드시 불리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유리한 상황, 불리한 상황이 영구적이지 않다. 유리한 상황에서의 주의 사항이 있다. 자신을 향해서 방심, 방만, 자만을 주의해야 하고 남을 향해서는 멸시, 무시, 박대를 조심해야 한다. 불리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불공평과 자아 인식 – 인생의 기본 지식이며 구원의 필수 조건이 있다. 하나님이 누구냐, 내가 누구냐 이다.

치명적 무지: (존재 파악)하나님이 누구냐를 모르면 나를 알 수 없고 내가 누구냐를 모르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스스로 존재하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구원 베푸는 자가 누구며 구원 받아야 할 자가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치명적 무지: (목적 파악)지금이 언제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때와 장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주어진 때와 장소는 인생을 위한 계획을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성취 현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성취는 인생의 현장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간과 장소는 빠짐없는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이다. 

인식의 유무: 자기 인식의 유무는 내 인생을 사느냐 남의 인생을 사느냐를 결정한다. 실제 나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남의 인생-드라마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진짜 내 인생이 있고, 가짜 내 인생이 있다. 

바울의 자기 인식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15:8): 사역으로 보아서는 사도 중에 가장 큰 자 일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가장 작은 사도로 인식하고 있다. 자기 인식의 기준은 다른 사람의 자질, 사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엡3:8): 사도 중에 작은 자에서 성도 중에 작은 자로 자신의 인식이 갱신된다. 고린도 교회의 노예 성도보다 더 작은 자라는 자기 인식이 돋보인다.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 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배설물(빌3:8):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이 배설물과 같다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특징이다. 과연 예수 보다 귀한 것이 있는가?

불공평의 은혜 – 형통한 상황에서 체험하는 하나님과 열악한 상황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모든 것이 풍족한 애굽에서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이끌어 나온 이유는 열악한 환경이 하나님을 적나라하게 체험하는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광야에서의 멸망은 의식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모르고 하나님을 모른 것 때문이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그것을 말해준다. 

불공평의 반전 – 하나님께서 없는 자로 있는 자를,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미련한 자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쓰시는 조건을 말하고 있다. 없는 자, 약한 자, 미련한 자는 자기 부인하는 자, 그 반대는 자기 시인하는 자이다. 자기 부인 여부가 예수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를 만든다. 그 다음의 관건이 예수가 나의 일부인가 전부 인가에 있다. 예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전부와 전무의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