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인생, 전능한 인생 I

Aug 25, 2019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시 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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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인생 전능한 인생(시81:10)

빈손의 필연성 – 입을 여는 사람과 열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비어있는 사람과 비어있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된다. 광야는 세가지가 없다. 길이 없고 양식이 없고 집이 없다. 광야의 집은 이동식 천막이었다. 임시 거처이지 영구적인 집이 아니다. 때문에 광야는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다. 생존의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의 공급에 달려있다. 많은 양의 만나의 확보가 생존을 궁극적으로 보장할 수 없고 천막이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구름 기둥 불기둥이 임하지 아니하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빈손의 자각 – 인생은 빈손으로 태어나고 빈손으로 죽는다. 숙명적인 빈손을 언제 깨닫느냐가 관건이다. 빈손을 일찍 깨닫느냐 늦게 깨닫느냐가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절망에 부딪히는 시간이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절망에 부딪혀 보지 않으면 빈손을 깨닫지 못한다. 풍성한 환경에서는 빈손을 알 수 없다. 삭막한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빈손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애굽의 삶에서는 빈손을 몰랐으나 광야에서는 누구나 빈손을 알게 된다. 

광야의 생존 방법 – 광야는 인간의 수단방법으로는 생존이 절대 불가능한 곳이다. 땅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늘을 향해 구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공급자이시다. 양식도 길도 거처도 하나님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물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 할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신하게 하여 인생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생을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 에덴에서부터 마귀는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속임수로 인간을 멸망의 길로 가게 했다. 

광야의 생존 수단 – 신8:3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신 의미가 무엇인가? 떡이 생존의 필수조건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떡은 물론 생존의 모든 필요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근본적 중요성은 말씀이 영생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인생과 인류 존재 우주만물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말씀이다. 이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의 상실은 전부의 상실을 말한다. 

내입을 열고 닫음 –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어야 한다. 입을 여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멘하며 믿으며 순종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닫는 것은 아멘을 거부하고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지만 열지 않은 입에 채우지 아니하신다. 기도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응답하시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생존을 보장하시지만 누구에게나 전능하신 것도 보장하시는 것도 아니다.  내가 여느냐 안 여느냐가 달려있다. 입을 열고 닫음이 하나님이 내안에 계시느냐 내밖에 계시느냐를 결정한다. 

내입을 크기 – 입을 여느냐 안 여느냐가 하나님이 내 안에 존재하느냐 내 밖에 존재하느냐를 결정하며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 죽은 존재냐  실제하는 존재 살아계신 존재냐를 결정한다. 나에게 있어서 말이다. 입을 여는 크기의 중요성이 있다. 입을 얼마나 크게 여느냐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크기를 결정한다. 큰 믿음은 크신 하나님, 작은 믿음은 작으신 하나님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크기는  무한하다. 그러나 믿음의 크기에 제한 받는다. 나의 싸이즈 만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나의 능력과 같다. 인본적 믿음의 한계가 그것이다. 

광야의 현장성 – 광야는 하나님이 구원과 축복을 계획하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시는 현장이다. 동시에 인간의 생존과 성공과 구원이 이루지는 현장이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볼수 없는 존재이지만 철저히 삶의 현장에서 존재를 드러내시고 말씀과 계획을 실현하신다. 인간의 구원은 삶의 현장의 문제다. 현실과 무관한 존재도 말씀도 아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현장이며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생명과 사망, 천국과 지옥 체험하는 현장이다. 성경은 두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말씀과 사건이다. 말씀은 반드시 사건으로 실제화되고 사건은 반드시 말씀을 입증한다. 히브리어 다바르(말씀)는 언어, 계명, 문제, 행동, 사건, 원인, 이유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씀의 사건화는  필연적이며 절대적 결과이다. 

광야의 특징(빈곳) – 광야는 Nothingness=Emptiness=Lifeless 완전 공허한 곳이다. 창조전의 상태와 같다. 이 상태는인간의 상태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존재는 극대화(Maximize)되고, 인간의 존재는 극소화(Minimize)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존과 인간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입증해준다. Nothing(무능)인생임을 깨닫는 인생은 전능한 인생을 살게 되고 인생이 Something(유능)  인생으로 착각하는 인생은 무능한 인생으로 끝나게 된다. 환경적 Empty로 인생의 Empty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충만되게 한다. Empty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