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될지라! (Be a blessing!)

Jul 14, 2019
주일대예배
구절: 
창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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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성 목사님 (울산 온양순복음교회)

 

복이 될지라(창12:1-3)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 복을 통해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이 인생 목적의 끝인가 시작인가? 불신자는 복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창대하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부와 명예가 성공의 목적이 되는 삶이 불신자의 삶이요 부와 명예를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이 창대케 되는 것이 신자의 삶이다. 복 자체가 목적인 삶과 복의 통로가 되는 삶이 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되 복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은 복이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히시는 것이다. 

복의 소비자, 복의 생산자 -- 하나님은 복의 계획의 시행은 복의 확장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을 향한 계획이다. 인생 위한 계획은 인생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의 핵심적 역할은 복의 수혜자요 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의 확장을 위해 복의 생산자, 혹은 공급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3:14).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신앙의 부채와 유산 --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가 있고 부채를 물려주는 부모가 있고, 축복을 물려주는 부모가 있고 고통을 물려주는 부모가 있다. 자식에게 부채를 물려주고 재앙과 고통 불행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다. 그러나 부모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면 축복과 행복을 물려줄 수 없다. 물려주고 싶어도 없으면 물려줄 수 없다. 남에게 복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복을 물려주게 된다. 재물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복을 나누어 주는 삶을 보여주고 그러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신앙의 유산 축복의 유산을 물려주는 삶이 된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행복 -- 행복의 선순환 법칙이 있다. 불행한 공동체안에서 개인의 행복이 가능할까? 설령 개인이 행복한 상태에 있다해도 그 행복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 될까? 개인의 행복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기적인 자세로 자신의 행복과 유익만을 추구할 때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과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이기적인 모습은 죄인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십자가 희생의 삶이 인류를 살린 것과 같이 남의 행복을 위한 희생을 감수할 때 남도 나도 행복하게 된다. 남을 불행하게 하면 나 역시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복을 나눠주는 복의 통로의 삶은 나는 물론 공동체 전체를 행복하게 만든다. 

빛과 소금이 되라 -- 산상수훈 핵심 메시지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본분에 대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빛과 소금의 중요한 가치적 공통점이 있다. 존재 가치라 아니라 영향력 가치이다. 금은 보화는 존재적 가치인데 반해 빛과소금은 영향력적 가치를 지닌다. 금은 보화는 자신의 존재가 희생되지 않고 보존 되어야만 가치가 보존된다. 그러나 빛과 소금은 자신의 존재가 희생되어 남의 존재에 영향을 주는데에 가치가 있다. 철저히 희생하여 남의 존재에 변화를 준다. 긍정적 발전적 축복적 영향을 준다. 공동체의 가치를 향상 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존재만을 위해 존재하는 금은 보화와는 완전 상반된 존재방식을 가진다. 

축복의 생명 -- 복의 생명이 있다. 살아있는 씨와 죽은 씨의 차이는 무엇인가? 심겨져 희생된 씨는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사람에게 양식이 되어 준다. 심겨지지 않고 희생되지 않은 씨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사용되지 않는 씨, 희생되지 않은 씨는 죽은 씨와 같다. 축복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만 누리는 축복은 심겨지지 않은 씨, 생명이 없어사용할 수 없는 씨와 같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목적은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를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은 십자가 희생에 있다. 인류를 살리기 위함이다. 인류의 구원과 행복과 관계없는 삶은 목적없는 삶이다. 인간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해도 성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 -- 모름지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어야 한다. 마귀의 자녀는 마귀의 목적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산다. 하나님은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신다."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하나님의 영광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으로 구현된다. 교회 유익을 도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유익을 도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불가능하다. 

위치 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함수관계 -- 높은 위치일수록 낙하할 때 큰 운동에너지가 발생한다. 복을 많이 받을수록, 성공할수록 세상에 줄수있는 영향력이 크다. 아무리 높은 곳에 있어도 스스로는 만족할지는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무런 의미와 기쁨도 못 느끼게 된다. 사용되지 않고 보관되어 있는 성공과 축복은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을 살지는 모르나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과 관계에서 의미가 주어진다. 성육신하셔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생명이 되시고 복이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