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진 무덤

Apr 21, 2019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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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진 무덤(눅24:1-6)

여인들의 생각 -- (무덤이 열려 있었다)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가면서 닫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덤문은 대제사장의 요청으로 군병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무덤문의 무게는 장정 20명이 움직여야 할 정도로 육중했다. 그러나 무덤 문이 열려 있었다. 무덤에 들어가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당연히 닫혀 있을 무덤문이 열렸고 당연히 있어야 할 시체가 없었다. 누구에 의해서 무덤문이 열렸을 까? 누구에 의해서 시체가 없어졌을까? 분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것이다.  

장소와 찾는것의 불일치 --(무덤 안) 찾고자 하는것을 찾기 위해서는 올바른 장소에 가야 한다. 예수를 찾으러 간 여인들은 에수님을 찾지 못했다. 예수님은 죽은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무덤 안에는 산 예수는 없다. 죽은 예수는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무덤 안에 있을 수 없다.살아계신 예수님은 무덤 안에 계시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다.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미 예고하 셨다. 부활 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무덤이 아닌 갈릴리로 갔어야 했다.

장소와 찾는것의 불일치 -- (불순종의 무덤)무덤을 찾아 갔을 때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다.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무덤에는 저주는 있으나 축복은 없다. 축복은 순종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다. 축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불순종의 자리에는 저주가 주어진다. 축복은 순종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축복을 원한다면 불순종의 무덤에서 나와야 한다.

장소와 찾는것의 불일치 -- (불평의 무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원하는 행복이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 불평의 무덤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불평의 무덤에는 불행은 있으나 행복은 없다. 불행하기 때문에 불평한다고 말한다. 불행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불행의 원인이 불평이다. 광야의 유일한 양식인 만나로 생존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이유는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평했기 때문이다.광야가 끝날 때까지 감사해도 부족한데 불평을 일삼았던 그들은 광야에 묻히고 말았다.     

장소와 찾는것의 불일치 -- (낙심의 무덤)희망과 절망이 상황과 환경에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환경에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 환경적인 요인이 성공과 실패의 절대적인 조건인가? 아니다.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낙심의 함정에 빠지느냐 아니냐에 있다. 낙심은 환경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문제다.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환경을 초월하여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무덤 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 (의심의 무덤)의심의 무덤 안에 있는자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일까? 죽은 믿음일까? 무덤 안에는 죽은자가 있을지언정 살아있는자는 없다. 세상 사람은 두 종류이다. 무덤 안에 있는자 무덤 밖에 있는자. 의심은 조건 때문이 아니다. 조건에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조건에 의해서 믿고 안믿는 것 자체가 믿음이 아니다. 의심의 무덤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한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죽은 믿음은 비어있는 열매이다. 쭉정이 믿음이다.

무덤 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 (원망의 무덤)원망의 무덤 안에 있는자는 감사가 죽은 자이다. 감사가 죽었다는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없었던 것으로 하는것이며 그토록 귀한 은혜를 무가치한 폐기물로 전락 시키는 것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었음을 단번에 무효화 시키는 것이다. 설령 원망할 만한 억울한 일이 있었다해도 원망의 무덤에서 나와야 한다. 억울함을딛고 그 이상의 보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잃지 않는것이다.

무덤 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 (불평의 무덤)기쁨이 없는 삶은 지옥의 삶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괴로움이 지속되는 삶이 천국의 삶은 결코 아니다. 불평하는 삶을 살면 남이 괴롭기 전에 내가 괴롭다. 기쁨이 죽은 삶이냐 기쁨이 살아있는 삶이냐는 조건을 떠나 예수 안에, 성령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롬14:17) 옥중에서도 환란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는 삶이 불평의 무덤 안에서 나온 삶이다.

무덤 안에 있는자, 밖에 있는자 -- (불신의 무덤)불신의 무덤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죽은 예수는 있을지 몰라도 살아있는 예수는 없다.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의 존재가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있는 사람의 차이는 불신의 무덤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있다.

나사로의 생명있을 때 없을 때 -- 생명이 없을 때는 무덤 안에 있었다. 그러나 생명이 있을 때는 무덤 밖으로 나왔다. 무덤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는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게 하시고 명령 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는 스스로 걸어나왔다. 생명이 있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