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III

Apr 07, 2019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단 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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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3:14-18)

짐짓(의도와 목적) --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 세 친구에게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했다고 하는데 짐짓 그리 하였느냐?"고 묻는다. 짐짓 의 의미는 의도와 목적을 말한다. 모든 행위에는 의도와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의도와 목적을 갖고 산다. 목적없는 삶을 산다면 죽은 사람과 차이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생존이 생존의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친히 밝히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1) 영원한 생명을 얻고 생명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짐짓(의도와 목적) --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육신적 목적과 영적 목적, 사람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일시적인 목적이 있고 영원한 목적이 있다. 무가치한 목적이 있고 가치있는 목적이 있다. 구원은 삶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는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은 필연적인 삶의 목적의 변화를 가져온다.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삶이 구원 전의 삶이라고 하면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삶은 구원받은 삶이다. 그 목적이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순교도 불사하는 것이다.

법(기준)의 충돌 -- (두가지 법)세상에는 두 가지 법이 존재한다.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과 성령의법이다. 적용되는 법은 소속된 국가 또는 체류 국가에 의해 정해진다.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사람은 생명과 성령의 법-하나님 나라 법의 적용을 받는다. 사단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게 된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사망의 결정된 사람이다. 생명과 성령의법 아래 있는 사람은 생명이 결정된 사람이다. 육신적인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지배하는 법에 의해 인생의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다.

법(기준)의 충돌 -- (상황기준)어떤 기준에 의해 판단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판단을 하게 된다. 편견에 의한 주관적  판단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객관적 기준을 갖지 않으면 공정한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강단의 위치가 오른쪽에 앉은사람 입장에서는 왼쪽이고 왼쪽에 앉은 사람은 오른쪽이다. 다 맞는 것이지만 다틀린 것이기도하다. 자기 입장에서는 맞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강단은 중앙에 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은 신뢰할 수 없는 기준이다.하나님의 말씀만이 기준인 이유는 변치 않기 때문이다.    

법(기준)의 충돌 -- (반대기준)하나님의 기준과 사단의 기준은 정반대이다. 하나님의 기준의 반대기준을 선택한 결과가 인간의 멸망을 초래했다. 육의 생각(기준)과 영의 생각(기준)은 반대 기준이다. 반대기준을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법)을 반대로 본다. 생명의 법을 사망의 법으로, 축복의 법을 저주의 법으로 오해하고 사망의 법과 저주의 법을 따라간다. 먹지 말아야할 선악과를 먹는 것이다. 지금도 사단은 속이고 있다. 육의 생각대로 하면 살고 영의 생각대로 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모르는 모든 사람은 여기에 속고있다.

확신(두가지 근거) -- 믿음의 근거와 기준은 두 가지다. 사람의 능력을 근거로 하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근거로 하는가? 안 믿는자는 사람의 능력을, 믿는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근거로 한다. 불신자는 권력과 재력, 지력을 절대시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보다 더 굳게 믿는다. 과연 거기에 비해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절대시하는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만물을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물질적이며 육신적인 것을 굳게 믿는 사람보다 월등해야 하지 않는가?

믿음의 세가지 수준 -- *문제와 비교하여 항상 열세에 있는 수준: 문제 앞에서 의심과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의 믿음이 있다. 단지 믿음이라는 지식뿐인 수준이다. 불신자와 다를 것이 없는 수준의 믿음이다.믿음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문제와 대등한 믿음: 문제를 만나면 무너지지는 않으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수준의 믿음이다. 갈등과 염려와 불안의 혼돈 속에 잠겨있는 수준의 믿음이 있다. *문제보다 항상 큰 믿음: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만나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 믿음이다. 문제를 능가하는 수준의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믿음의 수준이다.

상반된 응답과 결과 --(확인)기도와 믿음의 기대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확인할 수 있는것이 있다. 나의 믿음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서였나 나를 위해서였나? 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임받으려 했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살고 있는가?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위해 살고 있는가가 확인된다. 형통한 상황에서는 목적에 대해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경에서는 확실히 나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상반된 결과에 대한 태도 -- 상반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가 나타나는가? 믿음과 순종과 충성과 헌신이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상황과 환경, 기대한 결과에 따라 변질되는가 변질 되지 않는가? 변질의 여부가 궁극적인 승리를 결정한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변함이 없는 믿음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축복의 지속적인 역사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불변의 존재이시다. 믿음은 불변의 믿음이어야 한다. 가변적인 믿음은 비어있는 선물상자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