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축복

Oct 09, 2016
주일대예배
구절: 
삼하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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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식 목사님 (영통영락교회)

 

성전의 축복(삼하6:6-15)

하나님의 궤를 빼앗김 -- 엘리 제사장의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 리 해졌을 때 궁여지책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와서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임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전쟁에 패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궤까지 빼앗기는 전대미문의 수치를 당하게 된다.(삼상4:11) 법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지 7개월 동안 아스돗에서 애그론 으로 옮겨졌고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으로 독종과 사망의 고통을 당하게 되자 법궤를 원래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게 된다. 같은 법궤(말씀)가 어느 사람에게는 생명과 보호가 되고 어느 사람에게는 사망과 재앙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자세는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벧세메스로 간 법궤 -- 법궤를 탈취해간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 탈취로 인한 큰 재앙을 당한 후 두려워하여 법궤를 반환하게 된다. 소 두필이 끄는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보내어졌고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가 돌아옴을 기뻐하여 싣고온 소를 제물로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삼상6:15) 제사를 드린 것은 기뻐하실만한 일이었으나 그들은 경솔하게 실수를 하게 된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 궤를 들여다 보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많은 사람이 죽게된다.법궤는 함부로 만지거나 열 수 없는 것이다. 법궤는 신성불가침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함부로 만지거나 열수 없는 것과 같다. 법궤에 대한 망년된 자세와 처신은 하나님께 대한 자세와 처신이다. 보이는 것 중에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된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자세는 보이는 하나님의 것에 대한 자세로 나타난다.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진 법궤 -- 법궤가 블레셋 땅에 있은지 일곱 달만에 벧세메스로 옮겨지고 법궤안을 들여다 보다가 하나님의 진노 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재앙을 당한 후 다시 옮겨지기를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기셨다. 광야 40년 동안 끊임없이 성막이 이동했던 것처럼 법궤가 계속 움직였다. 아비나답의 집으로 법궤가 이동해 온지 20년이 지나가는 상황에서 온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은지 20년 동안에 국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에 의하여 초대왕으로 사울 왕이 세워졌으나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그 뒤를 이어 다윗이 택함을 받아 왕으로 세워진다. 그는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도우심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가장 융성한 시대를 이룬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오고자 한다.

법궤를 옮기던 웃사의 죽음 -- 왕의 명령에 따라 법궤 운반 책임을 맡았던 웃사는 법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소들이 뛰기 시작하여 법궤가 떨어질 위험이 처하자 손으로 법궤를 붙잡았다. 이 행동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성경은 분명히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라고 이유를 말한다. 웃사의 잘못을 성경적 근거를 통해 살펴보면 "고핫 자손이 멜 것이요.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민4:15) 법궤는 반드시 레위인에 의해서 운반해야 하고 반드시 메어서 운반 해애 하며 만지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의도에 앞서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이 지켜졌느냐가 핵심 문제이다.

오벧에돔의 집으로 간 법궤 -- 웃사의 죽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벧에돔에게 보관하게 한다.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으로 두려움을 느꼈음에도 왕의 명령에 따라 법궤를 자기 집으로 가져간다.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여호와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6:10-11) 법궤와 관련하여 탈취해 갔던 블레셋은 7개월만에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되었고 법궤를 운반하던 웃사는 만지다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한다. 반면에 오벧에돔은 단 석달간 법궤를 보관하다가 큰 복을 받게 된다. 같은 법궤와의 관계에서 운명이 다양하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성으로 옮겨진 법궤 -- 법궤로 인한 축복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법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온다."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4-15) 다윗은 춤을 추는데 알몸이 드러나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삼하6:20) 하나님으로 인하여 복을 받는 이상의 복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와 기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삶이 자신도 하나님도 행복과 축복과 영광이 넘치는 삶이 된다. 왕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귀하게 여기는 다윗의 신앙의 위대함이 돋보인다. 우리의 최대 영광과 기쁨은 무엇인가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육신의 기쁨인가 영적 기쁨인가?  

법궤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조롱한 미갈 --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가로되 이스랑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 신복의 계집종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삼하6: 20) 이에 대하여 다윗은 내가 사람 앞에서 춤을 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춘 것이라고 대답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소신을 피력한다. 미갈은 다윗과 달리 인간의 체면과 권위를 더 소중히 여겼다. 다윗과 미갈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미갈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게 된다. 평생의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법궤에 대한 자세는 하나님에 대한 자세요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운명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