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나, 예수

Jun 19, 2016
주일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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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복 목사

율법과 나, 예수(갈4:21-26)

구원 이전과 이후 -- 구원은 혼인잔치와 같다. 신부된 성도가 신랑된 예수님을 만나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장의 혼인잔치는 기뻤던 잔치가 손님들을 실망시키는 잔치로 끝날 뻔했다. 잔치의 핵심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몰라도 포도주는 즉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잔치가 없었던 것보다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구원 이전보다 구원 이후가 더 나쁘다면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구원이다. 구원은 분명히 이전보다 이후가 더 좋은 법이다. 만일 구원받은 이 후 기쁨이 식어지고 더 힘들어진다면 구원하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 사도 바울도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고백했다. 오직 예수에 의해서 더 좋은 포도주가 공급되는 것이다. 
 
두 자녀(율법의 자녀, 약속의 자녀) -- 성경에는 두 자녀가 등장한다. 약속의 자녀와 육의 자녀가 있다. 예를들어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가 아니다. 이삭이 약속의 자녀다.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태어난 자녀를 말하고 육의 자녀는 인위적으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태어난 자녀이다. 반대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없이 인위적으로 태어난 자녀이다. 하나님의 굳건한 약속에 의해 인위적으로 태어난 자녀는 약속의 자녀와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고민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명령하신다. 마귀의 자녀와 영의 자녀는 결코 함께할 수가 없다. 하나가 안된다. 
 
집에 있는 아들, 돌아온 아들 -- 탕자의 비유는 율법으로 사는 사람과 복음에 의해 은혜로 사는 사람을 비교하고 있다.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며 잔치 를 배설한 아버지를 향해 분노하며 원망하는 집에 있는 큰 아들은 율법으로 사는 사람을 말하고 돌아와 아버지의 환대를 받는 아들은 복음과 하나님의 의로 사는 자를 말한다. 율법을 행하는 삶의 특징은 아버지는 이미 모든것을 주셨으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았으나 염소새끼 한 마리조차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아버지를 비난하는 큰 아들과 같은 삶을 말한다.자기의에 의한 삶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삶이다. 자기 자신은 죽도록 희생했다해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감사도 없다. 주의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며 귀신을 쫓으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는 사람 에게 주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단호히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돌비와 심비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 돌판에 기록된 계명은 우리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불완전한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수가 없다. 하나님의 법을 인간이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의 역할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면 그 분이 나를 주장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내 안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생수와 유한한 생수 --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우물에서 얻는 물로는 갈증을 일시적 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으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그 배에서영생토록솟아난다고 하셨다. 육신적인 생수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영적인 생수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로 인하여 참 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생수가 아닌 내부에 존재하는 생수가 근본적인 인간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물을 먹는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고기낚는 어부, 사람낚는 어부 -- 갈릴리 해변에서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만나신 예수님은 그들을 새로운 삶으로 초청하신다. 고기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다. 고기잡는 어부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사람낚는 어부는 예수님의 목적을 위해 부르신 것이다. 사람낚는 어부는 나의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율법에 의한 삶은 나를 위한 삶이지만 복음에 의한 삶은 남을 위한 삶이다. 고기는 나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사람 낚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해결된다. 육신적 해결은 물질로 가능할 수 있지만 영적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육신을 위한 삶에서 영을 위한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신의 힘에 의한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구원받고 성령에 의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