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22 주일예배 - 여리고 정복 ①

Sunday, January 9, 2022 - 10:30 to 11:30

 

여리고 전쟁 (수6:1-3)

전쟁의 필연성 – 정복 하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정복의 대상이 수수 방관 자세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관문으로서 오랜 동안 훈련 받은 정규군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전쟁은 또한 두 가지 결과를 만나게 된다. 승리와 패배다. 쌍방 중에 한편은 승리자가 되고 한편은 패배자가 된다. 정복은 전쟁을 각오해야 하고 전쟁은 승리와 패배를 각오해야 한다. 

두가지 상황 – 전쟁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정에서 두가지 상황을 만나게 된다. 유리한 상황(조건)과 불리한 상황(조건)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자세다. 유리한 상황(조건)이면 반드시 승리하는가 얼마든지 패배할 수 있고, 불리한 상황(조건)이면 반드시 패배하는가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승리의 절대 조건 – 승리는 내 힘으로 가능한 상대를 만나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전쟁이냐 나 혼자하는 전쟁이냐에 있다. 승리를 위해 약한 상대만을 선택할 수 없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기 때문이다. 상황과 상대를 불문하고 승리가 절대 보장되는 비결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이다.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행은 절대 승리의 영원한 비결인 것이다. 

정복 대상(1절) –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하나님의 정복 명령은 정복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삶의 목표와 목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목표와 목적이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 의한다. 전투가 시작 되기 전 여리고 성의 반응은 보면 완전히 굳어 있는 상태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여리고 성 백성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는 가가 전투 시작 전의 상태다. 이미 승리와 패배가 결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담대함의 근거 – 육신적으로 물리적으로는 여리고 군대가 담대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해야 하는 상식과는 반대로 육신적으로 강한 여리고 백성이 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강한 군사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의 수많은 기적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때문이다. 마귀가 하나님의 사람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 때문이다. 

정복의 확정(2절) – ‘네 손에 붙였으니’ 여리고 백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가 확정 되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와 패배를 결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정된 말씀이다.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다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이다. 승리가 확정되고 확정된 것을 확신하고 믿고 가면 반드시 확인된다. 

정복의 확정 – 우리의 과거를 보시고 현재를 결정하시고 우리의 현재를 보시고 미래를 결정하신다. 하나님은 철저히 카운트 하시는 분이시다. 말씀대로 하시기 위해서는 일 점 일 획도 어김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운트 하셔서 보상을 결정하시고 징계를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주야로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그분만이 유일한 생사 화복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복의 진행 – 3절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성 주위를 계속 돈다는 것은 포위하는 것을 말한다. 한번만 도는 것은 행진에 불과하지만 매일 도는 것은 포위 상태를 계속하는 것이다. 포위한 자가 있고 포위 당한 자가 있다. 승리는 포위한 자의 것이다. 포위를 풀지 않아야 승리를 놓치지 않고 승리를 계속해야 마지막에 적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다. 누가 누구를 포위 하느냐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정복의 진행 – 성 주위를 도는 것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 실천적 문제다. 행동의 문제다. 하나님은 철저히 행동을 요구하신다. 행동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행동 없는 순종은 순종이 아니다. 행동에 의해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가시화되고 그 결과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나타난다.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에 의해 역사하시고 그의 존재와 섭리하심을 보여 주신다. 

정복의 진행 – 행동만이 믿음과 순종을 증명하고 역사가 일어난다. 행동을 위해 몸이 움직이려면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나야 몸이 일어난다. 문제는 마음속에 두 가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과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 두 마음의 충돌이 지속되는 것이 문제다. 부정적인 마음이 이기면 몸이 안 움직여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이기면 몸이 움직여진다.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충돌할 때 어느 마음이 이기는가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