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6.20 주일예배 - 약속의 나무 세우기

Sunday, July 26, 2020 - 10:30 to 11:30

 

약속의 나무 세우기(창30:37-42)

야곱의 1차 계약의 결과 – 1차 계약은 사람과 사람의 계약으로서 불완전한 계약이었다. 고의적으로 계약 이행을 기피 하거나 파기 하는 경우가 있고 본의 아니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불이행도 있을 수 있다. 본질적으로 사람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이 인간 역사의 목적이다. 그것이 진정 인간을 위한 계획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무지하고 무시하는 인간에게 생명 대신 사망, 축복 대신 저주의 결과가 왔다. 야곱의 1차 계약의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인위적으로 결혼을 위해 제시했던 계약이 자신에게 실패의 결과로 올지 몰랐다. 

야곱의 2차 계약의 시작 – 야곱의 말 그대로 라반은 계약을 10번이나 어겨 가며 야곱을 이용한 후 쫓아 내려는 악한 의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1차 계약의 종료와 함께 떠나려 했던 마음을 바꾸어 2차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나무 세우기 약속이다. 궁극적 계약 이행은 하나님의 허락과 보증 여부에 있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땅에서 모든 계획은 인간적 보증이 확보되어 있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완전 무효이다. 

선택한 나무(소명) –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용될 나무를 지명해 주신다. 많은 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지정하시는 나무가 있다. 나무 자체의 장단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지정한(지명)한 것이냐가 중요하다. 재료로서 탁월한 용도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택한 나무가 아니면 무용지물이다. 방주의 재료 선택도 마찬가지다. 노아가 선택한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명하신 나무를 사용해야 했다. 나무의 종류와 재질의 문제보다 누구의 선택에 의한 재료(수단)였느냐가 누구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냐를 입증하기 때문이다. 

선택한 나무(사명) – 나무가 야곱을 지명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나무를 지명한 것과 같이 인생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을 선택하신 것이다. 인간이 神(신)을 선택한 것은 일반종교이며 神(신)이 인간을 선택한 것은 유일한 구원의 복음인 기독교이다. 기독교와 일반 종교의 다른 점이다. 하나님이 인생을 자녀(소유) 삼으시고 그이 비전을 위해 사명과 함께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맡기신다.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 마귀의 소유였던 인생을 하나님의 소유로 부르신 것이다.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다. 

옮겨진 나무(위치의 지정) – 신분(정체성)의 변화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변화가 위치의 변화이다. 사명의 현장이 주어진다. 있어야 할 장소와 위치와 분야와 영역이 주어진다.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할 상황이 주어진다. 그 현장의 선택 역시 인생에게 결정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보내신다. 환경과 상황의 상태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어야 한다. 사람의 우선순위는 자신이 선호하는 환경적 조건에 있지만 믿음의 사람은 조건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곳인가를 확인한다. 환경(장소) 상태 보다 중요한 것이 누가 결정한 장소인가이다. 

옮겨진 나무(사명의 위치) – 하나님의 계획의 진행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은 이 땅이다. 주어진 현장이 사명에 따라 정해진 현장이다. 야곱에게 지명하신 세 종류의 나무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디자인된 후 지정된 장소로 옮겨져야 한다. 주어진 사명은 주어진 현장에서 수행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실패하는 결정적 원인은 시간과 장소에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장소와 시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요나의 실패는 장소 선택이 잘못된 것이다. 롯의 실패도 나오미의 실패도 하나님이 선택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세워진 나무(믿음) – 지명된 나무 지시된 디자인 지시된 장소에 배치된 후 마지막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 나무를 세워 놓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빠짐없이 진행되어 훌륭한 재목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그 장소에 그 시간에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세워져(일어서) 있어야 한다. 쓰러진 상태는 천년 만년 있어도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세워져 있지 않으면 말씀과 약속은 이루지지 않는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서있어야 한다. 믿음이 쓰러져 있으면 죽은 믿음이다. 살아있는 믿음은 다시 일어나는 믿음이다. 

세워진 나무(말씀 원칙 확립) – 나무가 쓰러진 것은 행위가 쓰러진 것이다. 믿음은 이론과 지식이 아니다. 행동이다. 지식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역사하는 것이다. 홍해도 요단강도 인간적 이론에 의해서 갈라진 것이 아니다. 믿음의 행동에 의해서 갈라진 것이다. 믿음이 쓰러지면 말씀이 쓰러진 것과 같고 말씀이 쓰러지면 하나님이 쓰러진 것과 같다. 전능한 하나님은 쓰러질 분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면 거짓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은 약속대로 역사하시지 않으신다. 어떤 상황에도 쓰러지지 않는 믿음이 쓰러진 모든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