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있는 사람 천국에 있는 사람

Nov 28, 2020

지옥에 있는 사람 천국에 있는 사람

18세기 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세인트폴 성당을 재건할 때의 일이다. 여러 해가 걸리는 큰 공사를 추진해 나가던 어느 날, 크리스토퍼 렌은 평상복 차림으로 공사 현장에 나가보았다. 그는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느라고 수고하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은 묻는 사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섯 자 길이에 석 자 폭 되는 돌을 다듬고 있소." 그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사람 역시 반갑지 않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오. 벌써 몇 해째 이렇게 돌만 다듬고 있소."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는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사역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 돌을 다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사람 중에서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평생을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고 또 평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이라 생각하는가?

현대인은 옛날과 비교하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풍족하고 편리한 첨단 문명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기쁨이 없고 분노가 가득하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것 같은데 마음은 불행하다. 남들은 내 처지와 내 형편을 몹시도 부러워 하지만 나 스스로는 내 형편을 저주하면서 살아간다. 어쩌면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진 존재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처럼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다. 이것이 현대인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행복함에 대한 감격은 깨달음에서 온다. 결코 소유의 문제가 아니며, 사건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 있고 아무리 큰사랑을 받는다 해도 깨달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감격이 없고 아무 기쁨도 없다. 참된 감격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발견되는 자아인식(自我認識)이기 때문이다. 소유가 기준인 인생은 물질적 가치를 행복과 성공의 원천으로 안다. 신앙의 사람은 소유가 아닌 존재 가치에 인생의 행불행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됨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신발이 없다고 불평했다. 신발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옷 색깔과 맞지 않고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짜증을 낸다. 다른 신발을 사기 위해 구둣가게에 갔는데 역시 못마땅했다. 이 구두도 맘에 들지 않고 저 구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었다 벗었다 하면서 가게 안을 다 돌아보아도 마음에 드는 구두가 없었다. 짜증을 내다 불평 하면서 다른 가게로 들어가려 하는데 뒤에서 아주 밝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문득 생각했다. "누구는 두 발이 없어서 아예 신발을 신을 수 조차 없는 사람도 있는데 어째서 나는 구두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렇게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일까."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이 마음에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했다. 선악과를 탐냈던 인간은 끊임없이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 치며 살아왔고 살아간다. 치열한 집착에 불구하고 소유욕이 채워진 적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물질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채울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영원한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소유의 문제와 존재의 문제 두 가지이다. 에덴에서의 범죄는 소유 문제가 아니라 존재 문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선악과 훼손은 소유의 훼손이 아니라 존재가 훼손되는 사건이었다. 존재가 훼손된 인간은 존재 해결을 외면하고 소유 해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귀의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진 인간은 예외없이 불행과 실패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행은 결코 소유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존재 해결에 답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깨닫는 자에게만 진정으로 감격이 있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다. 소유를 말한다면 소유함이 아니라 소유됨이요, 내가 그 분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내 지식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 의해 깨달아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8~9) 

감격은 절대적 은혜와 절대적 사랑을 깨닫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죄인이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가 오늘 나를 있게 했고 앞으로도 이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칠 때 영원하고 무한한 감격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감격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돌을 다듬으면서 지옥에 있을 수도 있고 천국에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