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산과 인간의 계산

Nov 15, 2020

하나님의 계산과 인간의 계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오 병 이어의 기적이 소개된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기적이다. 빈 들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예수님이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렇게 말씀 하심은 빌립을 시험하신 것이었다. 그때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빌립의 계산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계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계산 방식을 문제 해결의 절대 기준으로 했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자신의 계산 방식을 절대 기준으로 하면 언제나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 빌립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주님, 예상 비용은 이렇게 나옵니다. 저희 계산으로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주님의 계산으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명령해 주세요. 저희가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신 대답이었다. 우리는 계산 방식을 잘 알아야 하고 계산할 사람이 누구냐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빌립은 자기 계산 방식에 의해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사람이 계산해야 하는 전제 때문에 나온 결론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인간적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산 방식을 따르는 사람이다. 인간적 계산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 병 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인 기적과 축복에는 기적을 낳은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아이의 헌신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헌신은 이타적인 계산이다. 헌신이라는 이타적 계산은 나를 남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남의 유익이 나의 손해가 된다는 것은 세상적 사고 방식이며 계산 방식이다. 남의 유익은 곧 나의 유익이 되는 것이다. 나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먼저 배려하는 방식은 결국 모두의 유익을 위한 것이 된다. 

십자가는 나를 위해 남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랑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며 사랑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주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인류 전체가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주어진 공동체에서 모두가 십자가를 지는 자세를 가질 때 나도 남도 모두가 살게 되는 것이다. 

제자의 순종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순종은 나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빌립과 달리 안드레는 인간적 계산을 하지 않았다. 자기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식에 순종했다. 순종은 인간의 생각과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방식을 말한다. 결국 인생은 자기 방식의 삶을 사느냐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화와 복이 결정된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복된 훈련이 순종의 훈련이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방식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철저히 훈련했다. 순종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어지지 않아도 내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일단 순종하면 이해 안되던 것이 이해되고 믿어지지 않던 것이 믿어진다. 하나님의 방식이 절대 원리라는 사실이 획인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감사의 계산이 있었다. 주어진 오병 이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언제나처럼 감사하셨다. 감사는 모든 것을 플러스로 만드는 기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과 모든 섭리는 한결같이 우리에게 은혜가 아니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은혜요 사랑이며 축복이다. 

선악과 조차도 은혜요 사랑의 배려였으나 마귀의 속임수에 속은 인생은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불신하고 불순종하여 스스로 그 은혜와 복을 상실하게 된다. 그 상실은 하나님의 잘못된 의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의도를 정반대로 해석한 결과이다. 그래서 감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자세이다. 감사하지 않은 삶은 이유 여하를 떠나서 이미 비정상적인 삶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내 인생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계산 기준에 의하여 결론이 내려진다. 우리는 그날에 포도원 품군 처럼 모두 주인으로부터 품삯을 받을 것이다. 먼저 온자들이 나중 온 자들이 받은 품삯을 보고 주인에게 원망한다. 자기 계산과 주인의 계산이 일치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계산이 맞고 주인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약속한 약속대로 이행한 주인의 처사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산을 근거로 주인을 원망했다. 

다음 날 다시 포도원에 들어갈 수 있는 품군과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품군이 있게 될 것이다. 품군의 품삯은 품군의 계산방식에 의해 계산하지 않는다. 주인의 계산 방식에 의해 계산한다. 주인의 계산방식에 따르지 않는 품군은 그 날이 기회가 주어졌던 마지막 날이 되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형통한 삶은 주인의 계산 방식을 알고 그 방식에 따르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