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 하시는 것이다

Apr 26, 2020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 하시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력을 잃기 전까지는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 줄 아는가? 가장 간단한 것 같은 시력이 신적인 영역이라 할 만큼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어 망막은 매초마다 100억에 가까운 계산을 수행한다. 이미지가 시신경을 통하여 시각 피질에 전달 되기 이전에 벌써 그 많은 일을 수행한다. 존 스티븐스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망막의 신경세포 하나에서 0.01초 동안에 일어나는 과정은 500개의 서로 다른 비선형 방정식을 동시에 100번 수행하는 과정과 같다. 캐리컴퓨터로 최소한 몇 분 동안 작업해야 하는 양에 해당한다. 눈에서 1초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위해 1,000만 개가 넘는 세포들이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캐리 수퍼컴퓨터로 최소한 100년 동안 작업해야 하는 분량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정답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잠20: 12) 이 구절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시각과 청각만 밝혀내기 위해서도 평생을 바쳐야 한다. 더 큰 기적은 보이지 않는 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눈을 창조하는 것이다. 복음서의 치유 기적은 다양한 종류의 치유 기적이 등장한다. 

절름발이 치유, 벙어리 치유, 귀머거리 치유, 눈먼 자 치유 모두가 놀라운 기적이지만 날 때부터의 맹인의 치유는 보다 더 기적으로 분류 된다. 날 때부터 맹인은 뇌에 있는 시신경과 시각 피질 사이의 시냅스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잘못 된 것을 바로 잡는 차원이 아닌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그 사람을 맹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 못할 비극적인 일들을 많이 본다. 그 맹인 뿐 아니라 아기들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 볼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현재 볼 수 있는 것을 하나도 신기하게 생각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귀가 들리기 시작하고 눈이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아기 눈에 반창고를 붙여 놓고 몇 년 동안 그대로 둔다면 비록 물리적인 장애나 유전적 결함이 없다 할지라도 그 아이는 평생 맹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각 피질과 시신경 사이에 시냅스가 형성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과 의사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시냅스 형성은 고치는 능력이 아닌 창조의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뿐 아니라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특정 사건 특정 문제 특정 시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창조의 능력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의 경우에 국한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문제다. 천지 창조는 그 때에 끝난 사건이며 홍해가 갈라진 것 역시 그 때의 사건일 뿐이고 나사로가 살아난 것도 그때로 한정된 기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능력과 그의 은혜는 대상과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지 않는다. 천지 창조 이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일분 일초도 중단없이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와 능력은 역사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24시간 그 섭리 안에서 그 은혜로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일들이 존재하고 있고 불가능한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있으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경우 평생 해결되지 않는 불행도 있다. 불치의 병(절망적인 문제)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물론 치유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문제를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기도의 목표가 치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목표는 하나님의 의도에 있다. 우리 믿음의 강화이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목표로 살게 한다.  

치유와 축복과 승리가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도 오히려 하나님의 가슴에 못박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렵고 힘들 때보다 복 받고 잘될 때 타락과 배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택한 백성의 타락은 광야가 아닌 안정된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은 목숨 걸고 맹세했다. 그러나 다 도망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믿음은 연단 없는 안일한 삶의 결과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문제 해결을 안하시는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동안 연단과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점은 문제 해결이 아니다. 믿음의 해결이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