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성도와 군사 성도

Mar 22, 2020

군중 성도와 군사 성도

기독교는 단순히 수(數)에 의존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무장한 소수가 오히려 더 큰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종종 많은 무리를 규합하기보다 수를 줄여 일하실 때가 많았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다. 모두가 깜짝 놀랄 대단한 이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 라고 하시며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아오라고 하셨다. 

수천 명이 기겁을 하고 다 흩어졌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6:66)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고도 사람들을 모으는 데 실패하셨다. 예수님이 이적을 베푸시고 마음에 위로가 되는 무난한 말씀을 증거하실 때, 무리는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핵심(십자가)을 지적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물러갔다. 즉,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득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진리의 핵심을 말씀하시자 모두들 떠나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수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리 선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 수로 정당성을 주장해서는 주장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진리를 선포하여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요한복음 6장에서 군중들이 예수님께 운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표적 때문이었다. 각종 질병이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고 오병이어로 수천 명이 배부르게 먹는 장면을 목격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26) 

현대 교회의 약화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교회가 말씀으로 무장된 성도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떡을 주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는 메시아를 원했다. 자신들의 이러한 끝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메시아로 세운 왕은 ‘우상’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그들 나름의 하나님을 요구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금송아지’이다. 인간의 필요에 아부하는 종교는 ‘금송아지 종교’요 ‘우상의 종교’이다. 그것이 비록 여호와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인다 해도 내용은 우상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이 점점 인간의 욕구만을 채우는 ‘금송아지 종교’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거나 떡을 먹고 배불러 모인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모였다 할지라도 성도는 반드시 말씀의 요구에 도전받아 정련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의 기독교에 안주한다. 즉, 윤리로서의 기독교에 안주한다. 어린이 주일에 ‘자녀들을 잘 양육하라’고 외치며 어버이 주일에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윤리 강조를 기독교 정체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로 삼는다. 자녀양육, 효, 정직은 기독교만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이자 윤리이다. 여기에 안주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죄인으로서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다.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인 것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 후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고 헌신을 요구하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다들 떠나갔다. “제자 중 여럿이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6:60,66) 떡 먹을 때는 쉽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을 이야기하자 어렵다고 한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자”라고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나는 믿음이 약하다”며 뒤로 빠진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다. 불순종의 완곡한 표현이다.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무장하지 못한 모습이다. 무장 해제된 삼손과 같이 무력한 존재인 것이다. 참 진리가 선포되면 기드온의 3백 용사처럼 수가 줄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핍박이 있고 진리가 선포되면 성도의 수는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환경이 좋아지면 믿음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약해진다. 

진리로 인하여 수가 줄고, 진리를 인하여 수가 늘어난다. 이 진리를 유념해야 한다. 성도는 군중이 아니라 군사이다. 군사는 핍박이라는 연단을 능히 이긴다. 오히려 강해진다. 믿음의 강화는 전력의 강화이다. 전력의 강화는 구원의 수를 더한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