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과 넓은 길

Feb 29, 2020

좁은 길과 넓은 길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으나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다고 성경은 말한다. 구원은 전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넓은 길이다. 턱없이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면 당연히 찾는 사람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실제 구원의 길은 넓은 길 임에도 불구하고 왜 좁은 길일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 하여 찾는 이가 적은 것은(마7:14) 지불해야 할 대가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공짜이기 때문이다. 공짜라는 이유가 구원의 기회를 협소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 시대나 지금이나 가격대비 품질의 수준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 있다. 가격이 품질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이다. 

공짜 구원이 절대 안 믿어지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는 구원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만 무료 구원은 속는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비싼 것이 진리에 가까운 상식이다. 이 상식을 삶 전반에 매일 적용하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영생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말이 얼마나 받아 들이기 힘든 말이겠는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 준행을 통한 자기의 세우기를 포기하라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배신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요1:46)는 당대의 인식도 싼 것에는 구원이 없다는 경제논리가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경제적 구원관 아래서는 비싼 구원의 대가를 요구하는 율법주의 종교를 더 가치있게 보고 충분한 타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슬람, 불교, 힌두교는 다 엄격한 계율로 유명하다. 이들 종교가 ‘세계 4대 종교’ 반열에 든 것은 ‘비싼 대가를 지불할수록 좋은 종교이다’라는 종교적 고정관념때문이다.

일반 종교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이지 않으나 유독 기독교에 대하여는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슬람의 경우는 기독교로 개종하면 이슬람 계율상 사형 대상자이다. 가문을 욕되게 했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의 손에 처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경에서 세상 종교는 두 종류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10:20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두가지 종교뿐이라고 말한다. 마귀의 전략에 의해 가짜 종교를 많이 만들어 많은 가짜 종교는 진짜이고 유일한 기독교는 가짜라는 후레임으로 가둔다. 

구원이 좁을 수밖에 이유가 또 있다. 일반 종교들은 종교적 규율의 준수에 의해 종교적 완성도와 신앙의 수준의 가시적 평가가 가능하여 구원의 단계 상승을 점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구원은 보이는 행위적 완성도 기준이 아니라 영적 변화에 핵심이 있다. 예수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 변화에 있다. 

이런 영적 변화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좁은 길의 의미가 된다.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말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이유가 좁은 길이다. 그러나 좁은 길의 실상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넓은 길이다. 겉으로는 좁은 길이지만 속으로는 넓은 길이며, 넓은 길은 겉으로는 넓은 길이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좁은 길이다. 한 사람도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길이다. 예수 이외의 길은 멸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일반 종교는 겉으로는 넓은 길이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좁은 길이다. 인위적으로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위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게 생각 되지만 실제는 불가능한 것이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성령에 의해서 라는 조건이 좁은 길로 보이나 예수에 의해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만큼 넓은 길은 없다. 혼신을 다해도 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갈 수 있는 길과 갈 수 없는 길로 나누는 것이 솔직한 구분이다. 넓은 길은 갈 수 없는 길이다. 인위적으로 구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좁은 길은 갈 수 있는 길이다. 인위적으로 불가능한 구원이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생에 대하여 묻는 부자 청년을 예로 들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 입성이 바늘 귀라면 과연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 깜짝 놀란 제자들에게 사람은 불가능하나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