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은 우연이 아니다.

Feb 08, 2020

나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와 있는 곳이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닐 수 있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를 그의 계획에 의해 사용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정확하게 데려 가신 것이다. 우리가 지구를 한 바퀴나 도는 선교여행을 갔든 혹은 동네 시장을 갔든 하나님은 그 길에서 그분의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집에서 가까울수록 깨닫기 어렵다. 습관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도중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을 놓쳐 버리기 쉽다. 

갈릴리 가나에서 포도주 사건이 있은 후 어느 날 다시 가나에 예수님이 들르셨다. 그 때 마침 왕의 신하의 아들이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왕의 신하와 유대교 랍비와는 사회적 신분의 격차가 컸다. 그 벽을 넘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고 그 아들이 치유받게 되었다. 예수님의 존재에 의하여 우리에게 존재 의미가 주어진다. 동시에 그 시간과 공간에 의미가 있게 된다. 

세계적인 어떤 권력도 재능과 실력도 예수님을 움직일 수 없다. 확실히 예수님을 움직이는 방법이 있다. 그분이 주 되심을 고백하며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이다. 가나에서의 첫 번째 기적인 포도주 사건 후에 두 번째 기적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는 사건이다. 그 때 그 곳에 있게 된 것이 우연히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 곳에 있었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보냄을 받지 않고 시돈 땅 사렙다 과부 한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으며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으나 그들에게 보냄을 받지 않고 오직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보냄을 받았다. 사랩다 과부는 느닷없이 엘리야가 나타났을 때 놀랐을 것이다. 이미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 하셨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느닷없이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 탄생을 알렸을 때 목자들은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미 예수 탄생은 수 백 년 전부터 예언되어 있었다. 

아들의 치유를 요청하는 왕의 신하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치유를 명령하셨다. 명령과 동시에 아이의 병세는 즉시 호전 되었다. 주님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주님의 섭리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 기적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예수님과 왕의 신하 두 사람을 그 때, 그 곳에서 만나도록 하나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존재하시고 계획을 진행하시기 때문이다. 이 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도행전 8장에 비슷한 사건이 있다. 하나님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광야 길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다. 가는 이유도 무슨 일인지도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빌립은 순종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거기서 막힌다. 첫 번째 걸음을 내딛기 전에 두 번째 걸음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이 두 번째 걸음을 보여 주시기 전에 첫 번째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걸음을 내딛으면, 바로 코너를 돌아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 성경을 해석해 주고 복음을 전한 뒤 세례를 베풀고 즉시로 아소도로 옮겨진다. 동시에 멀고 먼 두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순간 이동은 은사가 아니라 기적이다.

사람뿐 아니라 참새도 마찬가지다. 고대 이스라엘 식료품 시장에서 참새는 가장 싼 것이었다. 참새 두 마리가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 하나에 팔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모르시고 돌보지 않으시고 보시지 않는 사이에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다는 말씀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역사의 결정적 순간인 1787년 6월 28일 제헌의회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몇 주 동안이나 토론이 지속되어 분위기가 험악해져 있을 때, 

프랭클린은 이렇게 연설했다. “여러분,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래 살수록 이 진리의 확실한 증거들을 더 많이 봅니다. 하나님이 인간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질 수 없다면, 한 나라가 그분의 도움 없이 건국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라는 성경 말씀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닉부이치치는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는 신발을 한 켤래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기적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리를 고쳐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의 고통을 누군가의 유익으로, 당신의 상처를 누군가의 치유로,당신의 불행을 누군가의 행복으로, 당신의 최악의 날을 당신의 최고의 날로 바꾸시기 위함이다. 우연히 당신이 그 때 그곳에서 그 상황을 만난 것이 아니다. 나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