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는 태도, 진노를 자초하는 태도

Dec 01, 2019

은혜 받는 태도, 진노를 자초하는 태도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2개의 계명으로 함축하여 가르쳐 주셨다. 첫째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근본적 의도는 사랑에 있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한 희생으로 나타나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였다. 성경 66권의 말씀이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이기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직 인생을 불쌍히 여기신 사랑의 실천이었다. 

마귀는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를 왜곡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곡해하고 오해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인간이 속은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 부터 인간을 사랑하셔서 에덴을 만드셨고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여 하나님의 의도와 상반된 삶을 살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 불행조차 하나님은 마음 아파 하셨다. 그 해결책이 하나님 자신이 희생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탄이 갖고 있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너무도 사랑하신 하나님이 직접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이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사랑이다. 사랑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데서 출발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입장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그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결정된다. 은혜의 소중함을 안다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가 나의 모든것을 다하는 자세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타난 것을 안다면 우리 또한 나 자신을 온전히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온전한 희생으로 감사하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도 되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은 원하면서 드리는 것에는 인색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원하면서 하나님을 위한 헌신에는 소극적이라면 구원이 불확실 하든지 구원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 구원이 확실한 사람은 나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보다 더 중요하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가 분명하고 누구의 목적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하다. 구원은 삶의 목적과 기준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완전히 반대로 바뀌는 것이다. 향상과 진보 차원이 아니라 혁명적인 변화를 말한다. 

성탄은 인류 구원의 프로잭트의 가시화이다. 십자가의 희생을 목적한 성탄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신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희생으로 구원받은 삶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삶이 된다면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참담한 결과를 만들게 될 것이다. 아직 구원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의 집에 들어가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것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현대 크리스챤의 비극은 하나님에게 배은망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냉정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사함을 받았음에도 용서하기보다 원수를 갚는 삶을 산다면 어떤 결과를 거두게 될것인지를 알고 있는가? 축복을 위한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 불순종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알고 있는가? 많은 축복을 받은 결과가 하나님을 향한 헌신보다 육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세상 쾌락 추구에 바쁘고 예배에 더 열중하기보다 여행에 더 바쁘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귀중히 여기고 더 충성하여 하늘에 더 많은 상급을 쌓게 하기 위함이다. 일시적인 세상을 위한 축복이 아니다. 영원한 나라, 영원한 시간을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장차 들어갈 하늘 나라를 위한 것이다. 날마다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자세가 되지 않으면 은혜가 아니라 진노를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단 한번이라는 excuse에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그 한번의 excuse는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찾아와서 지난번의 excuse에 이어서 계속되는 excuse라고 말하지 않고 오늘 만이라고 말한다. 계속 빠지는 것이 아니고 오늘 만 빠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에도 또 오늘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래 오늘만이야!” 라고 맞장구치며 스스로 위로하고 정당화한다. 우리 자신의 정당화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은 무서운 함정이다. 그 함정을 파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축복을 타락의 함정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기회를 배신의 기회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용서의 기회를 복수의 기회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기회를 증오의 기회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은혜 받아야 할 기회를 진노를 자초하는 기회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