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이 펴지려면 내손을 과감히 펴야 한다

Oct 27, 2019

내인생이 펴지려면 내손을 과감히 펴야 한다

밥값을 잘내는 사람과 밥값 낼 때마다 뒤로 빠지는 사람 중에 결과적으로 누가 더 성공할까? 남이 밥값 내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열 번 먹어도 열 번 내는 성격이다. 그 회사에서 밥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그의 아내의 설명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얻어먹는 것이 계면쩍어서 그런지 항상 밥값을 내다 보면 주위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다음부터는 아예 낼 생각을 안 할뿐더러 비싼 것을 시키는 무리도 생겨난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도 역시 또 밥값을 먼저 낸다. 

반면에 매번 밥값을 안 내거나 식사 자리에 앉아마자 밥값 낼 만한 사람을 찾아 잘 먹겠다고 넉살 좋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밥값을 잘 내는 사람은 자기가 밥값을 잘 내는 줄 아는데, 밥값을 안 내는 사람들은 자기가 밥값을 안 내는 사람으로 찍힌 사실을 모른다. 그 이유도 상당히 다양하다. 자기가 샀을 때만 기억하는 선별기억형,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눠준 것도 자기가 산 것으로 계산하는 가정식형, 식사자리에서 재롱을 떨었다는 이유로 밥값을 대신하는 연예인형 등은 나름대로 상식적인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살 것도 아니면서 쇠고기 먹자는 사람, 상대가 돈을 더 버니 당연히 내라는 사람, 아랫사람이니 당연히 얻어먹는다는 사람들은 모두 남의 아량에 기대어 자기의 인색함을 합리화 내지 정당화 한다. 밥값을 안 내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친구들이 모두 사라지고 선배들은 뒤를 봐주지 않으며 후배들은 무시한다. 이렇게 밥값을 내지 않고 모은 돈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 성향의 근본이 인색함에 기인하기 때문에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인색한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형제나 부모는 물론 배우자도 멀리할 수 있다. 

결국 밥값을 내지 않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실이지 유익이 아니다. 이를 무시하면 진급, 사업기회, 상속, 선의의 혜택에서 완벽히 배제된다. 재정적으로 아무리 곤궁하다 하더라도 남의 밥값을 공짜 음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한 다음 규칙을 따르라고 권고하고 싶다. 연장자나 돈을 많이 버는 친구가 두 번 사면 나도 한 번 산다. 그러나 동료가 한 번 사면 나도 한 번 사야 한다. 아주 간단한 규칙이다. 아무리 밥값을 잘 내는 사람도 누가 밥값을 안 내는 사람인지 기억한다.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도 밥값 이외의 일에는 절대 그 인색한 친구까지 챙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일로 사람을 평가한다. 타인의 배려에 대하여 검소함으로 위장하지만 당신의 모든 장점이 그것을 이길 방법은 없다. 밥값 내는 것은 자선과 구제가 아니라 성공적인 투자이다. 사람을 향한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렇다. 예수님의 비유에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지 않았다'는 책망과 그 반대의 경우를 들어 칭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인간관계의 자세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관계와 하나님의 관계를 분리해서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 사회에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성도된 자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빛과 소금된 삶이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한 사람의 삶이 인간 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우해 주시기를 바라는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작은 부인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설움을 당하면서 살아온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사무엘상 2:5-8에 나온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한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모순이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원하면서 그에게 대한 순종은 인색하고, 즉각적인 응답을 원하면서 기도에는 게으르다. 자기 잘못에 대하여는  무한한 용서를 원하면서 남의 잘못에 대하여는 가차없다. 

성경과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는가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고 국가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나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고 버리지 말며 지키라 내가 그를 지키리라 나를 높이라 내가 그를 높이리라' (잠4:5-8)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신다. 자기 인생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만이 나를 지켜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것이요 하나님께 부요한 것은 나에게 부요한 것이다. 인색하게 모은 재산이 나를 지켜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한다.  내 인생이 펴지려면 내손을 과감하게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