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싸우는지가 미래를 결정한다

Sep 07, 2019

어디에서 싸우는지가 미래를 결정한다

산업 역사를 보면 망할 수 없는 기업이 왜 무너지는지, 성공할 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성공했는지 흥망성쇠의 원인이 밝혀진다. 1960년대까지 세계를 주도했던 영국 자동차 산업이 망한 것은 기술력이나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본업에서가 아니라 정치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는 지역정치의 희생양이었다. 

1990년대까지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를 장악했던 일본은 기술력만 믿고 양산 경쟁력 향상을 소홀히 하다가 한국에 기회를 열어주고 말았다. 한국이 무섭게 추격하는 동안에도 일본 반도체 기업 리더들은 사내 파벌 싸움에 골몰했다. 일본에 전문가가 없었던 것도, 자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모든 걸 가졌지만 본업 대신 정치 싸움하다 무너져 간 것이다.

산업 전반에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세계 제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이다. 덩치로 단연 1등이다. 그 분야도 예외없이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그 산업의 핵심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제조원가의 절반이나 차지한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변화는 역사적인 또 한번의 변화의 기회가 된다. 한국이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자 산업이 전환되면서 세계적인 전자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변화의 기회를 잡았던 것처럼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또 한번의 도약의 기회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종전의 내연기관에 얽매어 있으면 전기차 시대를 놓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싸움터가 과거의 내연기관에서 새로운 전기기관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새로이 등장하는 전쟁터가 어딘가를 알고 그 곳에서의 경쟁에서 승리를 해야한다. 시간적인 싸움의 현장을 분별해야 한다. 과거에 얽매어 과거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미래의 싸움터는 패배가 결정된 것이다. 과거에 얽매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화려했든지 비참했든지를 막론하고 과거는 지나간 싸움터이다. 다가오는 싸움터를 위해 준비하지 않고 과거의 싸움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미래가 오기도 전에 미래를 놓쳐 버린 것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상실하고 사는 박물관 신앙이 있다. 과거는 살아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죽어있는 것이다. 지금을 승리하고 있어야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어야 살아있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고정관념은 과거에 집착하는 폐단을 수반한다. 과거에 고착된 생각이 불식되지 않으면 현재도 과거요 미래도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삶은 유통기한이 끝난 제품과 같다. 사용 불가능한 인생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싸움터냐 남의 싸움터냐의 문제가 있다. 자기 문제 해결도 바쁜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 간섭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싸워야 할 싸움터는 방치하는 동안 나에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패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승리를 누리는 그 현장에 뒤늦게 나타나는 어리석은 패배의 주인공이 된다. 남의 문제에 시간을 낭비하는 교만한 인생이야말로 어리석은 인생이다. 

신앙생활은 전쟁이다. 육적 전쟁이 아닌 영적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이 육적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면 이미 전쟁은 실패한 것이다. 싸워야 할 전쟁터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신앙생활의 결정적 실패는 현장을 잘못 선택한 것에서 기인된다. 마귀는 번번히 육적 싸움으로 오해하게 한다. 영적 전쟁터를 벗어나게 한다. 선악과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 문제다. 이슈를 물질 문제로 다루게 하여 영적 문제를 놓치게 만든 것이다. 

마귀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싸움의 현장을 잘못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터를 잘못 알게 만드는 것이다. 영적인 영역이 아닌 육적인 영역에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영적인 영역을 외면하고 육적 영역에 매달려 있는 동안 마귀는 파죽지세로 영적 승리를 확보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설령 육적인 영역에서 성공했다해도 그 성공은 영적 실패를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신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보는 먹고 마시는 것의 확보가 아니라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확보에 있다. 육적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영적 하나님의 나라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 어디서 싸우고 있는가가 미래를 결정한다. 과거의 싸움인지 미래의 싸움인지 영적 영역의 싸움인지 육적 영역의 싸움인지 그것이 미래를 결정한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