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Sep 03, 2016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잎새와 같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에 나오는 이야기다.  워싱턴 그리니 치 빌리지에 화가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 어떤 작은 벽돌집 꼭대기 방에 두자매 수와 존시가 6월에 공동화실을 마련했다. 그런데 11월에 폐렴이 돌아 그만 존시가 병석에 눕게 된다. 어느날 의사는 수를 불러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살 가망이 없다고 한다.

수는 존시가 무언가를 거꾸로 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창밖 건너편에 있는 담쟁이 넝쿨을 보며 남은 잎새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잎이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래층에 평생 동안 화가를 꿈꾸며 살아왔으나 변변한 작품 하나 그리지 못하고 60세를 넘긴 초라한 노인 베어먼이 살고 있었다. 수는 베어먼에게 존시의 아픈 이야기를 했다. 그날은 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눈과 섞여서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존시가 커튼을 걷어달라고 했다. 수는 마음을 졸이며 커튼을 올렸다. 다행히도 잎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잎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존시는 마지막 잎새 하나가 굳세게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의사가 와서 보더니 이제 건강이 좋아져 영양 섭취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아래층 베어먼 노인은 갑자기 급성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사실 베어먼은 찬비가 내리던 그날밤 벽에 담쟁이 잎을 그리다가 병을 얻은 것이다. 그의 마지막 걸작품은 죽어가는 존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그린 마지막 잎새였다. 존시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죽은 것이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화가는 그 마지막 잎새를 그리고 하늘나라로 갔다.  

세상은 온통 어디를 가나 갈등과 분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의 소식이 들리고, 세계가 긴장 가운데 대립하고 있다.가정들은 어떤가? 이혼율,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극단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선악과 사건 이후 그 책임을 물을 때 아담은 아내 때문이라고 회피한다. 소위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기심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불행을 모른 채 하게 만든다.분명히 자신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떠넘기는 파렴치가 팽배한 시대를 살고 있다.

빌립보서 2:6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고 지존자이시고,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시고, 예배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스스로 영원히 영광 중에 계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 역사에도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성육신 사건에 대해 오해가 많았다. 그 오해로 신학적 오류를 범하는 일들이 생겼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이 문제를 규명했다. 요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분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밝힌 것이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서신이다. 그 서신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소개하며 두 가지의 아주 중요한 키워드를 사용한다.

"낮추시고"라는 단어와,  "높이셨다"는 단어이다. 빌2:8-9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셨더니 하나님께서 높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높이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이셨다는 것이다.얼마나 지극히 높이셨는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고,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2:9-11>

여기에 신앙의 역설이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저마다 높아지려고 남을 밟고 올라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을 지혜롭고 수단 좋고 능력있 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남을 위한 희생이 나를 위한 희생이다. 다른 영혼을 위한 마지막 잎새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마지막 잎새는 매서운 북풍을 견뎌 냈다. 떨어질듯 가냘픈 잎새임에도 꿋꿋이 매달려 있었다. 베이먼의 희생이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가 되어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