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양식

Jan 22, 2023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출 16:15-21

 

광야의 양식(출16:15-21)

광야의 시작은 양식 문제의 시작 – 먹는 문제, 양식 문제는 인류 최초의 문제이며 최후의 문제이다. 인생은 시작 순간부터 양식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양식은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사는 양식이 있고 죽는 양식이 있다. 생명 나무 열매가 있고 선악과 나무 열매가 있다. 하나는 순종의 열매이고 하나는 불순종의 열매이다. 첫번째 시험도 양식의 시험이다. 선악과 시험도 만나의 시험도 양식을 통한 말씀 순종에 대한 시험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 <양식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과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 양식에 대하여 알아야 할 두 가지 지식이 있다. 공급자와 사용자가 있고 소유권과 사용권에 관한 것이다. 양식의 공급자는 하나님이시고 공급받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사용권을 사람에게 주셨다. 양식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 <양식의 두 가지 숙제> 먹을 것이 있느냐의 문제: 양식의 공급 문제 해결의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 애굽 방식이 있고 가나안 방식이 있다. 애굽 방식은 나일 강물을 퍼 올려서 자기 발로 농사를 짓는 방식이었으나 가나안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농사 짓는 방식이다. 세상 방식은 인간 스스로 공급하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방식은 하늘에서 공급하는 방식이다. 

각 사람의 식량 대로 거둘지니 – <양식(물질)의 용도와 용량> 물질의 용도와 용량(필요량)의 문제가 있다. 물질의 사용 목적과 목적의 필요량의 문제가 있다. 목적있는 물질이 있고 목적없는 물질이 있고 필요한 물질이 있고 필요하지 않은 물질이 있다. 필요의 여부와 목적의 여부는 물질이 수단화하느냐 목적화 하느냐를 결정한다. 목적과 필요를 벗어난 물질은 용도가 왜곡된다는 위험이 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의 위험은 물질의 용도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더니 –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 올 때에 많이 거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의 재량에 따라 수확량의 차이가 있게 된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는 각자의 재량의 차이까지 감안하셔서 적게 거둔 경우도 많이 거둔 경우도 결코 부족함도 넘쳐남도 없이 정확히 필요를 채우셨다는 것이다. 공급량의 정확한 관리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멜로 되어 본즉 남음도 부족함도 없었다 – 수입에 관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지출까지 관리하신다. 십일조에 관한 말라기 3:10-12에 보면 창고에 넘치도록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황충이 먹지 않게 하시고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며 토지 소산이 멸하지 않게 하신다. 수입에 대한 축복도 중요하지만 지출에 대한 축복도 중요하다. 예상 못한 수입도 축복이지만 예상 못한 지출을 막아 주시는 것도 축복이다.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 물질이 없을 때와 있을 때, 성공했을 때와 실패 했을 때, 부요할 때와 가난할 때, 어느 때가 위험한가는 물질이 있을 때, 성공했을 때 부자가 되었을 때 보면 알 수 있다. 물질을 없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했으나 물질이 있게 되면서 물질을 믿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다. 

남겨 두지 말라 – 남겨 두지 말라는 말씀을 청종치 않았다는 것은 물질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물질을 믿는 수단으로 순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하는 수단으로 불순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물질의 사용이 믿고 순종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불신과 불순종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수단이 되면 복과 형통의 수단이 되고 그 반대는 재앙과 실패의 수단이 된다. 

무리가 아침마다 식량대로 거두었으며 – 남겨두지 말라는 지시는 하나님이 평생 매일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다. 현재가 존재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은 평생 오늘의 지속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하루치 양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평생 지속되는 오늘 양식의 해결이 평생의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물질과 말씀의 함수관계 – 물질은 말씀 순종을 목적으로 한다.(출16:4, 신8:2-3) 말씀 순종이 물질 해결이 되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목적은 물질 해결이 아니라 말씀 순종에 있다. 생존 해결은 양식이 아니라 말씀에 있고 물질 해결은 말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생존과 생명은 말씀에 있다. (요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