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 집의 복

Jan 27, 2019
주일대예배
구절: 
삼하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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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목사님 (춘천 순복음교회)

 

오벧에돔 집의 복(삼하6:6-11)

국가의 완성 --다윗은 왕위에 오르자 마자 주변 적대 세력들의 공격으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전쟁을 승리하고 마지막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한 후 블레셋에게 뺏겼던 하나님의 궤를 찾아 오고자 한다.다윗에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땅에 방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옮겨 올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게 된다.개인,가정,국가를 무론하고 인간중심의 완성이 온전한 완성이 아니다.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이 온전한 완성이다.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앞서 잊혀졌던 하나님의 궤를 찾아 옮겨 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세상의 모든 성공이 성공이 되려면 중심에 누가 계시느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궤를 보관했던 아비나답 -- 신앙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돌리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을 통하여 징계하심으로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이 죽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하나님의 궤를 원수들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다.(삼상4:11)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이 가져간 7개월간 그들에게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겁을 먹은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 지경 벧세메스로 보낸다.(삼상5:1:12) 벧세메스에 도착한 하나님의 궤를 아미나답의 집에 20년간 보관하게 된다.(삼상7:1-2) 하나님의 궤를  3달간 보관하고 큰축복이 있었던 오벧에돔의 집과는 달리 아미나답에게는 진노나 징계는 없었으나 아무런 축복의 역사도 없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던 웃사의 죽음 -- 다윗은 삼만명의 군사와 수많은 백성들과 함께 새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싣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운반을 담당했다. 운반 도중 나곤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뛰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 이것을 진노하신 하나님이 웃사를 치시므로 현장에서 즉사한다. 하나님의 궤 운반 방법은 법궤의 고리에 채를 걸어 네 사람이 메고 운반케 되어 있다. 수레에 싣거나 사람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하나님의 고유 권한과 영역에 속한 것은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Untouchable한 하나님의 구별된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악과이다. 주의 날, 주의 종, 주의 것등이 절대만지면 안되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궤를 가져 오려 했던 다윗 -- 삼만명과 많은 찬양대원을 동원하여 거창하고 성대하게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은 규모나 형식이 아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과 규정대로 하느냐에 있다. 떨어지려는 법궤를 붙잡은 것이 나쁜의도가 아니다. 문제는 운반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고 인위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절대 직접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방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개별적 차별없이 사람마다 동일한 조건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나 이름없는 종이나 노예, 유무식,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은 변함없다.

오벧에돔 집에 임한 축복 -- 아비나답은 하나님의 궤를 보관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놀라운 기회를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20년간 이라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짧지 않은 그 많은 세월을 낭비했다. 20년이면 인생의 결정적 승부의 기회로 충분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흘려보내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다. 반면에 오벧에돔은 단 3달 뿐이었다. 짧은 석달 동안 하나님의 궤를 지켰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하루 아침에도 민족의 운명을 바꾸고 세계의 운명을 바꾼다.

오벧에돔의 자세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의 말씀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씀이 있다. 이미 그 법궤로 인하여 즉사한 웃사의 소식은 알고 있는터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죽음의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죽음을 각오한 믿음이 본받을 만한 결단이었다. 하나님의 궤는 지성소안에 있는 것이다. 지성소는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린 후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산제사의 의무를 지닌다. 평생의 삶이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지는 산제사의 제물된 삶인 것이다.

오벧에돔의 자세 -- <자원하는 마음> 하나님을 위한 모든 행위는 강요된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감사에서 비롯된 자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반대급부를 위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위협에 위한 강제가 아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라가는 자는 자기를 부인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성도의 모든 행위는 감사에서 비롯된다. 성도의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희생이 귀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오벧에돕의 자세 -- <충성하는 마음> 아비나답의 20년이오벧에돔의 3달과 비교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충성에 있다. 충성은 마음 전체를 바친 상태를 말한다. 단 하나인 삶의 목적이 변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또한 충성은 초지일관하는 것을 말한다.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임무에 대하여 생명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 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충성은 삶의 목적이 맡기신 사명에 있고 그 사명 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