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 갈길 2

Sep 16,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행2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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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려 갈길(행20:24-28)

연명 인생,사명인생 -- 인격적 피조물인 사람이 비인격적 피조물인 짐승과 다른점은 생존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생존해야하는 목적이 있다는 데에 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목숨을 유지하는 연명이 아닌 목숨을  사용하는 사명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다. 연명의 삶은 얼마나 사느냐 얼마나 건강하냐 얼마나 풍성하냐 얼마나 좋은 주거 환경에 있느냐에 목적이 있지만 사명의 삶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연명의 삶은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목숨을 소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 사명의 삶은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를 위해 목숨을 사용하는 삶이다. 삶의 의미는 연명에 있지 않고 사명 에 있다.

사명의 요소<정해진 방향> -- 사명에는 방향있다. 목표가 있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방향이 확실한 사람이다. 달리기 에는 속도가 생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방향이다. 만일 방향이 틀렸다면 뛰어난 속도 만큼이나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방향이 정확할 때 속도의 가치가 유효한 것이다. 바울은 향방없이 아니하고(고전9:26) 푯대를 향하여(빌3:14) 달린다고 고백한다.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방향이 확실한 사람과 불확실한 사람의 차이가 있다. 같은 불행에 직면한 나오미 가정의 두 며느리 의 대처하는 자세가 다르다.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굽히지 않는다. 사명자는 방향이 확실한 사람이다. 목표가 확실한 사람이다.

사명의 요소<정해진 원칙> -- 사명에는 원칙이 있다. 사명을 수행하는 모든 상황에서 항상 반영되어야 하는 원칙이 있다. 원칙에는 자신의 원칙이 있고 하나님의 원칙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 다 하나님의 원칙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확실한 방향은 확실한 원칙과기준에 의해 확인되고 지켜진다. 진행과정에서 방향의 정확성이 확인되는 방법이 원칙과 기준을 확인하는 일이다. 진리 라는 의미는 불변적 원리, 원칙과 기준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축복의 원리이며 기준이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기준이요 원리이다. 렘33:20-21에서 주야의 약정을 파할 수 있다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할 수 없다고 단언 하신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신다.

사명의 요소<정해진 때와 장소>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하나님의 계획에는 시간의 계획과 장소의 계획이 반드시 포함된다. 계획이 실현되는 현장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철저히 인생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 현장이 시간과 장소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정확하게 하나님의 허락하신 시간과 장소를 지킨 경우와 아닌 경우의 결과는 정확히 말씀 그대로였다. 허락하신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 경영은 계획된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이루어진다. 천지를 불러서 증거를 삼는다는 말씀은 천지의 존재와 움직임이 말씀을 증거한다는 말씀이다. 천지는 말씀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

사명의 자세<더러움이 없는> -- 행20:26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감히 장담한다.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증거에 책임을 다했다는 말이다.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다하지 아니하면 직무유기이며 방조가 된다. 당연히 징계 대상이 되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아니한 사람의 특징이 있다. 불성실과 불충성과 나태와 태만을 인정하고 사죄하기 보다 변명과 핑계로 모면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무책임과 책임전가 야말로 비겁하게 자신을 깨끗하게 포장하기 위해 공동체를 더럽히는 해악이 된다. 인류 사회의 원초적인 악의 출발이 아담과 하와의 책임 전가의 거짓에서 비롯된다.

사명의 자세<꺼릴 것 없는> -- 살전1:4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게 하려 했다'는 고백이 나 온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다. 당연히 사람이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선포는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의  귀에 거슬리고 부담스럽게 들린다. 하나님을 싫어하게 되는 원인이다.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타협하면 구원을 위한 복음이 변질되고 생명력을 상실한다. 타협이 갖는 치명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단은 말씀 선포자에게 저항하고 거부감을 나타나게 하여 말씀 그대로 선포되지 못하도록 한다. 이 계략에 속지 말고 소신껏 말씀을 전파하여야 한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타협하지 않고 말씀 선포한 것 때문에 순교하게 된다.

사명의 자세<아까운 것 없는> -- 행20:24에서 사도 바울은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를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페르샤 제국에 남아있던 유대 민족이 하만의 계교로 억울한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당당히 나아간다. 마13장 천국 비유에서 보화와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공통점이 나온다. '자기 소유를 다팔아 그것을 샀다는 것이다. 예수를 만난 사람의 특징이 있다. 예수를 위해서 아까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쁘게 자기 소유 전부를 팔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