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보라 I

Jul 15,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출1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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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보라(출14:13-16)

천배 복의 분기점 -- 하나님의 복의 허락하심은 언제든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천배의 의미가 숫자적인 뿐 아니라 무한성의 가능성을 말하지만 조건없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절대 조건이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에게 한해 가능한 것이다. 홍해 사건의 중요한 의미가 천배 복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홍해를 건너기전 애굽에 있는 상태에서는 천배의 복이 불가능하다. 천배 복은 세상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다. 천배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을 말하기 때문이다. 홍해를건넌후 하나님의 복이 가능하고 요단을 건넌후 하나님의 복이 가능하다. 복은 구원받은 후, 연단 받은 후에 가능하다.

구원의 분기점 -- 홍해 건너는 사건은 구원 사건을 말한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축복과 저주가 나뉘어지는 사건이며 생명과 사망이 나뉘어지는 사건이다. 홍해 사건은 모든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사망의 인생에서 생명의 인생으로, 저주의 인생에서 축복의 인생으로, 패배의 인생에서 승리의 인생으로, 절망의 인생에서 소망의 인생으로 전격적인 인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인생의 분기점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 스스로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생에게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며 불변의 인생 전환의 불변의 기준이다.

구원의 분기점의 절대 필연성 -- 애굽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부르짖는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자유함을 얻어 애굽을 나와 처음 부딪힌 난관이 홍해 사건이다. 애굽에 있을 때는 고통스런 것 때문에 부르짖었으나 죽음에 직면했던 것은 아니다. 죽음에 직면하기전에는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홍해 앞에서 죽음에 직면해서는 구원의 필요성을 절절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가 이토록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평탄한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갈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 에 서게 되면 자세가 달라진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토록 위대할 수가 없고 절실할 수 없다.

구원의 분기점의 영원성(일회성) -- 본문에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홍해를 기준으로 건넌자는 애굽을 영원히 볼 수 없고 건너지 못한 자는 광야를 영원히 볼 수 없다. 홍해를 기준으로 생명있는자와 사망에 있는자, 저주에 있는자와 축복에 있는자, 패배에 있는자와 승리에 있는 자가 영원히 분리된다. 생명에 있는자는 영원히 사망에 있는 자를 볼 수 없고, 축복에 있는자는 저주에 있는자를 영원히 볼 수 없다. 천국 간자는 영원히 지옥에 있는자를 볼 수 없고 지옥에 간자는 영원히 천국간 자를 볼 수 없다. 홍해 사건은 일회적으로 반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홍해사건은 단 한번뿐이다. 인생도 일생뿐이다.

구원의 해결성(현재성) -- 본문에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신다. 구원은 결론적으로 문제 해결을 말한다. 죽음의 문제, 저주의 문제, 심판의 문제, 인생 문제 전부의 해결을 말한다. 인생문제의 집합은 죽음이다. 그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의 문제 해결의 약속과 보장이다. 두려움은 과거 또는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고 있다. 지금 두려운 것이다. 그 문제가 과거 것이든 미래것이든 현재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지금해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도 미래도 해결하신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해결하신다는 것이다.

구원을 보라 --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는 것은 너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다. 너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다. 너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신다 는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이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방해하는자가 될 수가 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자기의가 하나님의 의를 방해할수 있고 자기의가 하나님의의를 거역하게 된다. 하나님의 앞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하시는 하나님을 뒤따라 가야 한다.

지팡이 잡은 손을 내밀어 -- 홍해를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지시는 '지팡이 잡은 손을 내밀어' 홍해를 갈라지게 하라였다. 손에 잡은 지팡이가 중요하다. 내손에 잡고 있는 지팡이가 핵심이다. 내 손의 역할은 지팡이를 잡는 것이요 그리고 지팡이를 잡은 채 홍해를 향해 내미는 것이다. 내 손의 능력이 아니라 지팡이의 능력이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다. 40년간의 연단의 결과가 모세로 하여금 빈 손이 되게 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지팡이 -- 그 지팡이는 나의 지팡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다.(출4:20) 내 지팡이의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의 능력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을 향해 갈때 그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갔다. 모세 자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잡힌 지팡이가 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모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사명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 의 지팡이를 손에서 놓친 적이 없다. 모든 일에 지팡이을 통하여 역사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내밀어 앞에 있는 홍해를 갈라야 한다. 오직 지팡이(십자가)에 의해서만 죽음과 저주와 심판과 모든 문제가 갈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