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 1

May 06,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요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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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요16:7-13)

예수님의 떠나가심의 의미 -- 십자가 수난의 예고를 듣고 놀라 예수님의 앞을 가로막았던 제자들에게 떠나심의 필연성을 말씀하신다. 떠나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는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제자들은 알지 못하기에 그길을 막아섰던 것이다. 둘째, 십자가에 죽으신 후 죄사함의 증거로 부활이 있게 된다.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셔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부활을 확증하시는 것이다. 셋째, 부활 후 모든 구원받은 성도의 궁극적 본향인 하늘나라 입성을 위해 승천하신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모든 인생의 죄 값을 대신 갚으시는 것이다. 그 사명을 다하신 예수님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떠나심의 유익 -- 예수님의 떠나가심은 하나님의 정하심이다. 그것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베드로의 만류가 책망받은 이유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정하심에 대한 무지와 오해요 방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떠나심에 의해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심으로 구원을 확증하신것이다. 성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구원을 위해 성자 하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개별적으로 적용시키시고 땅끝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구원을 각자 체험하게 하신다. 구약시대를 성부시대, 신약 시대를 성자시대, 종말시대를 성령시대로 부른다.

보혜사 성령의 사역 -- 성령께서 필수적으로 오셔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알수 있다. 예수님 공생애 동안 내내 예수님의 오신 목적과 구원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으나 깨닫는 제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 먹으려는 가룟유다 역시 예수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말씀을 무시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구약 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말씀의 성취를 누누히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알아 듣지 못했다.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함에 제약이 있을수밖에 없다. 성령이 오시면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실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인생을 일일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책망 -- (죄에 대하여)"나(예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의 정의는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하나님과의 분리는 하나님 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망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믿는 길뿐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죄는 예수를 통하여만 하나님 관계를 회복될 수 있다. 분리에서 하나로의 회복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뿐이다. 헤아릴 수없는 문제로 고통 당하는 인생 문제의 핵심은 "죄"에 있다. 죄의 해결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다. 인생 문제의 근원이 죄이며 근본적 해결이 죄의 해결에서 비롯된다. 죄의 해결이 사망의 해결이다. 생명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삶 전체가 무효가 된다.

성령의 책망 -- (의에 대하여)"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나를 다시 보지 못함이요"아버지께로 가는 사람은 오직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뿐이다. 예수님의 아버지께로 가심은 믿어 구원받은 자들의 행방을 말해준다. 의의 길의 향방이 어디인가? '의'는 기준이자 방향이다. 기준의 목적은 방향에 있고 목적지에 있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자만이 아버지 나라에 합당한 자이다. 아버지 나라에 합당한 자는 아버지 나라에 들어간다. 윤리적 도덕적 의로움은 '의'가 아니다. 죄의 해결이 의다. 죄의 해결이 이루어진 자만이 아버지 나라에 들어 간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사는 자이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칠때 까지 씨름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의와 하나님의 의와의 충돌이다. 자신을 얼마나 죽이느냐에 그 비결이 있다.

성령의 책망 -- (심판에 대하여)"이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죄의 원인을 제공했던 사단이 세상 임금이다. 그 임금은 이미 심판이 확정된 상태이다. 심판은 선고, 판결로서 형의 확정을 말한다. 형이 확정된 사단은 최후의 일각까지 인간의 타락을 시도한다. 사단의 시도에 희생되는 사람과 벗어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철저히 사단의 수하 노릇을 하던 인생이 구원 후에는 사단을 이기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쓰임받게 되는 것이다. 불의의 도구 인생이 의의 도구 인생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생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길은 단 하나 예수믿고 구원받는 길뿐이다.

성령의 내주 --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진 경험을 해봤는가? 기름이 있을때는 거리와 높이와 짐의 무게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갈 수 있다. 그러나 기름이 떨어지면 빈차 자체도 움직일 수 없고 그 자동차 자체가 짐이 되고 문제가 된다. 성령의 내주 여부가 그렇다.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는 기름이 항상 있는 자동차와 같고 성령 내주하지 않는 성도는 기름없는 자동차와 같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7) 예수를 부인하면 두려워 숨었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순교를 두려워 않는 담대함으로 복음 전파에 앞장섰던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