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 2

Apr 29,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7: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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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합(눅7:36-43)

운명 변화의 결정적 동기 : 인생의 생사화복은 소유의 변화에 있지 않고 존재의 변화에 있다.존재의 변화는 피조물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조물주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조물주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본문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리세인과 죄인인 여자이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나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양쪽 십자가에 달려 있던 두강도 중 한사람은 구원받았으나 다른 강도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안타까운 장면과 흡사하다. 물리적인 만남보다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인과 죄인(죄를 모르는 죄인) : 죄인이라고 멸시받는 여자가 바리새인 집에 나타났다. 바리새인은 죄인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종교 귀족으로서 당시 사회의 상류층이었다.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 했으나 진심으로 존경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그런 찰나에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초청도 하지 않은 여자가 나타나 잔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이다. 바리세인은 율법 준수에 철저했다. 율법 준수에 의한 구원을 굳게 믿는 그들은 의인이라는 확고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의인이라는 자긍심은 죄인을 향한 극도의 차별로 나타났다. 바리새인의 착각은 죄에 대한 무지때문이다. 율법 행위에 의한 구원에 고착되어 있는 착각으로 죄에 무지한 것이다   

의인과 죄인(죄를 아는 죄인) : 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 앞에 죄인인 여자가 나타나  예수님에 의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짐을 확인 시켜준다. 죄인임을 모르는 바리새인은 구원을 받지 못했음을 죄인임을 아는 여자는 구원받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한다. 바레새인은 예수님을 죄인과 함께 어울리는 동류의 사람으로 매도했다.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 죄를 모르는 사람과 죄를 아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자는 죄인이었으나 의인이 되고, 바리새인은 의인이라는 착각으로 여전히 죄에 머물러 멸망을 향해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죄의 해결(죄를 덮어서) : 행위 구원을 굳게 믿는 바리새인은 행위로 죄를 가리거나 해소된다고 믿고 있다.더 나아가 모태부터 율법을 지켜온 그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아무리 많은 선한 행위를 해도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의인이라는 착가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겉포장을 아무리 아름답게 해도 죄는 여전히 죄로 있게 된다. 모든 종교는 선행으로 죄를 희석하거나 값을 치루는 방식을 주장한다. 죄는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않는다. 행위 구원을 말하는 모든 종교가 종교적 의식이 매우 어렵고 철저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죄의 해결(죄를 쏟아서) : 믿음 구원은 죄를 덮거나 미화 시켜서가 아니라 죄를 다 쏟고 드러내어야 한다. 속죄양의 피를 다 쏟아 부어 드리는 것과 같이 죄를 다 쏟아야 한다. 바리새인은 종교적 행위와 종교적 지식과 규칙과 차별화된 특권 의식으로 자신을 철저히 포장하는 데 반해 죄인인 여자는 자신의 수치와 허물을 다 드러내는 모욕과 천대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한 삶을 사람들과 예수님 앞에 다 드러내고 죄사함을 구하여 예수님의 속죄의 은총을 입는 복을 받게 되었다. 완벽한 구원은 죄의 완벽한 사함에 의해서다. 완전 무결한 사함은 오직 예수의 피밖에 없다. 주님 앞에 모든 죄를 다 쏟아야 한다.

향유 붓기 : 시간을 부으라 -- 여자가 부은 향유는 여자의 과거를 다 부은 것이다. 지금까지 몸을 파는 삶을 살았던 과거를 다 쏟아 놓은 것이다. 죄인으로 살던 과거를 다 쏟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의 미래를 살게 된다. 과거를 쏟아 버리지 않으면 과거와 똑같은 미래를 살게 된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반복을 살게 된다. 실패를 반복하게 되고 불행을 반복하게 되고 절망을 반복하게 된다. 구원은 과거를 반복하는 삶이 아니다.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이 살아간다. 이전 일을 기억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향유 붓기 : 마음을 부으라 -- 죄인인 여자는 한없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마음을 쏟는 것이다. 마음이 쏟아지려면 눈물이 쏟아져야 한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눈물을 많이 흘린다. 회개는 구원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죄를 쏟아 놓으려면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한다. 마음을 쏟아 놓으려면 눈물이 쏟아져야 한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여자는 한없는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그 여자를 정죄하는 바리새인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눈물이 없지만 나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눈물이 많다.

향유 붓기 : 소유를 부으라 -- 이 여자가 예숭님께 부어드리는 향유의 값이 삼백 데나리온이다. 굳이 성경이 값을 밝히는 이유는 워낙 그 값이 비싸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부자도 아닌 가난한 이 여자 입장에서는 전 재산을 드린 것이다.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소유 전체를 드린 의미가 중요하다. 나의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당연한 반응이며 의무이며 축복이다. 구원 전에는 삶의 경영을 내가 했으나 구원 후에는 주님이 경영 하신다. 구원 전과 후의 분명한 변화는 누가 내 삶의 주체가 되느냐이다. 시간과 마음과 소유 전체를 맡기는 것이 구원받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