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곳과 깊은 곳 3

Feb 25,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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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곳과 깊은 곳 3 (눅5:2-7)

얕은 인생과 깊은 인생 --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셨다.두 배는 두 종류의 인생으로 말할 수 있다.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영적 기준으로 보면 육적인 인생과 영적인 인생이 있다. 얕은 인생은 육적 차원의 인생, 깊은 인생은 영적 차원의 인생으로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오신 사람-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서도 얕은 곳에 있는 사람과 깊은 곳에 있는 사람이 있다. 예수를 형식적으로 만난 사람과 실제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있다. 두 배 중에서 베드로 배는 에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된다. 다른배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배이다. 예수님이 계시는 같은 바닷가에 있었어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깊은곳으로 가는 사람이며 만나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얕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가능에서 불가능으로,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 얕은 곳에 있는 인생은 자신의 기준으로 가능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다. 인간적 가능성에 의존하는 삶은 반드시 불가능에 직면 한다. 반대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절대자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은 반드시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 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깊은 곳에 있는 삶은 불가능 가운데 있는 삶이다. 불가능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불가능이 없는 삶이 되게 한다. 불가능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한계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가능에 부딪혀 보지 않은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자신에 대해서다. 한계를 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과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가장 어리석은 상태가 자신을 모르는 상태이다.

제한적 인생에서 무제한 인생으로 -- 인간적 가능성을 근거로 한 인생은 결국 불가능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가능한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불가능에 부딪히면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결국 불가능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스스로의 한계성 때문이다. 예외없이 죽음 앞에 서게 되면 깨닫게 된다. 절망으로 끝날 인생이 영원한 인생이 되는 기적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가능해지는 것이다. 얕은 곳에서 제한된 인생을 끝낼수밖에 없었던 인생이 깊은 곳에 도전하여 무제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기적적인 축복이 오직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분은 우주 만물의 도움이 전혀 필요없는 분이시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다.

현재적 존재와 미래적 존재 -- 인생이 보이는 현세가 전부인가? 아니면 보이지 아니하는 내세까지인가?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는 현세가 전부인 인생을 사는가? 내세까지의 인생을 사는가에 차이가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인정여부에 관계없이 내세가 존재한다. 천국과 지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상 사람들이 천국지옥의 실제 여부에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누구나 확인할 날이 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죽음이 오기 전에 천국의 존재를 믿고 준비하느냐이다. 예수 믿는 것보다 축복이 없는 이유가 이때문이다. 인생의 전부를 투자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문제가 구원의 문제다. 세계적인 성공과 출세의 주인공이라해도 천국과 관계없는 현세를 살았다면 실패한 것이다. 영원한 천국과 비교할 성공이 있는가? 영원한 지옥보다 고통스런 실패가 있는가? 보이는 현세는 보이지 않는 내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세는 내세를 준비하는 유일한 마지막 기회이다.

신념과 신앙  -- 신념의 인생이 있고 신앙의 인생이 있다. 이른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마7:21-23에 보면 '천국에 들어 가는자는 주여 주여 하는자가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고 하신다. '주여 주여'하는 자는 분명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이요 실제는 자신의 이론과 기준에 절대화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화 되지 아니하고 자기 기준이 절대화된 사람이다. 예수님의 신랄한 책망을 받았던 부류인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이 그 사람들이다. 오늘 날도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음을 모르고 지옥으로 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함정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무리가 불신 세력이 아니라 누구보다 신앙이 투철하다는 자기 착각에 잡혀 있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육의 인생, 영의 인생 -- 피조물을 두 종류로 나눈다면 인격적 피조물과 비인격적 피조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유일한 인격적 피조물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창조된 특징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육체와 함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영을 가진 존재는 하나님과 사람뿐이다. 육체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무리 바르게 잘 살아도 실패한 인생이다. 영혼을 방치한다면 인생의 본질을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본질인 영혼을 위해 살아야 인생을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있다. 본질은 영혼이다. 육체는 그릇에 불과하다. 핵심인 영혼을 위해 살아야 본질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산다. 육체만을 위해 산다면 비인격적 피조물과 동일한 존재로 사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광스런 영적 존재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