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곳과 깊은 곳 2

Feb 18, 201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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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곳과 깊은 곳(눅5:2-7)

실패의 두 가지 원인 -- 본문에 "밤이 맞도록 수고 하였은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나온다. 실패에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수고(노력)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실패가 있고, 수고를 했음에도 실패한 경우가 있다. 수고를 하지 않은 경우는 원인 규명이 간단하지만 최선의 수고를 한 경우의 실패는 깊이 살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노력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력하되 어떤 기준과 원칙에 의한 노력이었느냐가 확인되어야 한다. 모든 성공이 요구하는 기준과 원칙이 있다. 막연한 노력이 아니라 성공이 요구하는 기준과 원칙에 의한 노력이어야 한다.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는 베드로의 말은 지금까지의 노력이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에 의한 노력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 -- 예수님이 오신 후 빈 배였던 베드로의 배는 가득 찬배가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면 빈 배였으나 가득찬 배가 되고 예수님이 없으면 가득찬 때도 있지만 빈 배가 된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가득찬 인생, 빈 인생으로 달라진다. 말씀대로의 삶과 자기 생각대로의 삶이 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기 전과 후의 삶이다. 가득찬 배였으나 빈 배가 되고 빈 배였으나 가득찬 배로 끝나는 인생이 있다. 가득찬 배는 에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뿐더러 예수님을 맞이할 공간도 없다. 예수님 없는 배는 빈 배가 되는 날이 온다. 빈 배는 예수님을 환영하며 예수님 모실 공간이 있다. 이 배는 드디어 가득차는 날이 온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후 천국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의 현장에서 사용해야하는 말씀이다.  말씀의 원리대로 움직이면 현장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이 즉시 확인된다.

댓가의 지불 -- 말씀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말씀의 성취를 확인할 수 없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말씀의 성취는 현실의 현장에서 반드시 확인된다.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육신적 수고와 물질적 투자와 시간적 투자가 필연적이다. 댓가가 지불되지 아니하면 성취되는 것은 없다. 축복은 순종의 댓가가 지불된 결과이다. 응답은 기도의 댓가가 지불된 결과이다. 에덴 동산을 떠난 이후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만 얻을수 있도록 결정해 놓으셨다. 예외적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수고의 댓가를 지불해야 만 한다. 남이 흉낼 수 없는 성공을 한 사람은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고통스런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기븜을 누리는 사람은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고통을 견딘 사람이다. 얕은 곳에 간 사람은 얕은 댓가를 지불한 결과로 적은 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고 깊은 곳에 간 사람은 깊은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될 것이다.

얕은 곳과 깊은곳(상대적 불가능과 절대적 불가능) -- 깊은 곳이 절대적 불가능이라면 얕은 곳은 상대적 불가능이다. 얕은 문제가 있고  깊은 문제가 있다. 능력에 비하여 작은 문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인간적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문제와 가능한 문제가 있다. 나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문제가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필요로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이다. 불가능한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을 의해서만 가능한데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필요로 하신다. 절대 불가능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절대순종과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과 순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 필수적 문제다.

믿음과 순종의 필요성 -- 얕은곳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능력과 지식으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얕은 문제만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이 무의미할 수 있다. 인간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지막에 부딪히는 문제가 사망과 지옥이다. 설령 세계를 제패했다 해도 죽음의 문제는 불가능한 문제다. 결국 믿음이 필요하고 순종이 필요한 이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지식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내능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이 필요한 불가능한 상황이 믿음이 필요하고 순종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이는 것들을 믿느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느냐의 문제다.

무모한 인생 지혜로운 인생 --   보이는 것을 믿는 삶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삶이 있다. 믿음의 본질은 보이는 것을 믿는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히11:1)얕은 곳에 머물러 있는 삶은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삶이다. 모름지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삶은 깊은 곳에 도전하는 삶이다. 보이는 것을 믿고 거기에 일생을 맡기는 삶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께 일생을 맡기는 삶이 있다. 어느 편이 지혜로운 선택이며 어리석고 무모한 선택인가? 보이는 물질을 믿고 일생을 맡기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이 없다. 역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인생과 하나님 이외의 것을 신격화한 삶의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모래 위에 지은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