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밖에

Dec 24,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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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밖에(눅2:8-11)

첫번 성탄(First Noel) --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듣는 첫번째 주인공은 들에서 밤을 지새던 목자들이었다. 당시 목자는 가장 천한 대접을 받는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가장 낮은 비천한 신분에 있는 그들에게 첫번 성탄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첫번째로 뽑힌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의 첫번째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구원의 대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모든 인생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주 는 것이다. 들판에서 밤을 지새워야하는 목자의 모습이 생존을 위해 평생 유리방황하는 모든 인생의 모습이다.광야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곳이다. 길이 없고 집이 없고 양식이 없기 때문이다.     

밤에 -- 목자들이 밤에 양들을 지키고 있었다. 양에게 목자는 생명과 같다. 목자의 보호와 인도가 없으면 양은 생존이 불가능하다. 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밤은 빛이 없기 때문에 캄캄하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것이다. 길을 잃으면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인생이 절망하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워서만이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누구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길이 보이지 않는데에 있다. 인생은 모두가 양이다. 길을 인도하는 목자가 필요하다. 광야(들)는 길이 없다. 인생 역시 길이 없다. 인생은 처음가는 길,모르는 길을 가기 때문이다. 캄캄한 길을 간다. 목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밖에서 -- 목자는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드물다. 양을 지키기 위해서는 들판에서 양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밤이야말로 양 곁에 있어야 한다. 들판은 집이 없다. 인생의 광야에 없는 것 세 가지 중에 하나가 집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은 끝없는 유랑생활이었다. 수시로 천막을 옮겨야 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집이 없는 존재이다. 에덴에서 추방된 이 후 인간은 집없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집을 떠난 후 집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숙명이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 지원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마8:20)는 말씀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모든 인생을 두고 한 말씀이다.아버지께로 돌아가야만 집이 있는 것이다. 돌아가야 할 본향, 천국만이 나의 집이다.

양떼를 지키더니 -- 엄밀히 말해서 목자가 양떼를 지키는 이유는 생계 때문이다. 목자의 직업이 양을 지켜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들판 에서 고생하는 이유는 오직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광야는 양식이 없는 곳이다. 광야에 없는 것 세 가지(길,집,양식) 중에 하나가 양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생활 동안 양식 해결은 오직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뿐이었다. 인생의 양식은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떡으로만 사는것이 아니요 하난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물질적 양식보다 근본적 양식이 말씀이다. 양떼 역시 목자에 의해서만 양식이 해결된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이유가 그 때문이다. 예수만이 진정한 양식이다. 육신의 양식은 물론 영의 양식이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마6:33)

목자들 -- 당시의 목자라는 신분과 직업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태생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 노예 신분에 지나지 않는 목동은 거의 선천적 동기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태어날 때 목동의 자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양을 키우는 일을 평생이어가는 것이다. 종의 신분에서도 가장 낮은 계층에 해당된다고 한다. 비인격적 대접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인생은 태어날 때 이미 죄의 종으로 태어난다. 죄의 태어난 인생은 평생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피차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인은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예수님은 밖에 있는 사람을 위해 오신 것이다.

최악의 인생, 최선의 인생 -- 평생을 찬 바람 부는 들판에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과 고난 속에 살아가는 목자들은 가장 열악한 삶인 것은 분명하다. 인생은 불공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평생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짐승의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 운명에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공의이다. 공평하시다는 말이다. 세상이 불합리할 수록 하나님의 진리가 빛이 나고 불공평할 수록 하나님의 공의는 빛을 발한다. 찬바람 부는 들판에 있어도 예수를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최고의 인생이요 호화로운 궁궐 안에 있어도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최악의 인생이다. 육신적이고 환경적인 인생의 조건이 인생의 행불행을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