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크기

Aug 06,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6: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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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크기(마6:30-33)

믿음의 보편성 -- 믿음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믿는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불신자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 믿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믿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탄다. 믿기 때문에 수십층 꼭대기에서 편안히 잠을 잔다. 믿지 못하면 불안하여 한 순간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나 믿고 있으나 무엇을 믿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불신자는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을 믿는다. 신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불신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보이는 것을 믿는다. 신자는 보이는 것을 믿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 보이는 것을 믿는 삶이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삶이 있다. 보이는 것은 실제적이며 현실적인 것으로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비실제적이며 비현실적으로 보는 것이 세상 사람의 삶이다.

적은 믿음과 큰 믿음 -- 불신자가 아닌 신자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믿음의 유무에 앞서 믿음의 크기가 문제가 된다. 적은 믿음이 있고 큰 믿음이 있다. 믿음의 크기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믿음이 크고 작은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적은 믿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며 큰 믿음은 하나님을 큰 하나님으로 믿는것이다. 나의 믿음의 크기가 하나님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문제에 대하여는 제한 받지 않으신다. 그러나 나의 믿음에 대하여는 제한 받으신다. '하나님의 믿음대로'가 아니라 '네 믿음대로'이기 때문이다. 문제보다 큰 하나님으로 믿느냐, 문제보다 작은 하나님으로 믿느냐 의해 문제 해결 가능성이 정해진다. 보이는 것 기준으로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언제나 작고 문제는 언제나 크게 보인다.   

믿음의 기준(사람 기준, 하나님 기준) -- 믿음의 크기의 차이는 왜 생기는가? 문제(사건)에 따라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본문 30절의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말씀에서 새와 들풀의 생존 문제가 있고 사람의 생존 문제가 나온다. 사람의 능력으로 볼때 새와 들풀의 생존 문제와 사람의 생존 문제는 비교가 안 되는 문제다. 인간의 능력을 기준으로 작은 문제는 가능하다고 믿고, 큰 문제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기준으로 하면 작은 문제가 있고 큰 문제가 있다. 기능한 문제가 있고 불가능한 문제가 있다. 인간적 가능성에 근거하여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아니다. 혼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의 기준은 인본적인 기준이냐 신본적인 기준이냐에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동일성 -- 인간의 능력은 문제의 규모에 따라 해결 가능성에 차이가 있다. 가능한 경우도 있고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는 다르다. 새와 들풀의 생존문제 해결이나 사람의 생존 문제 해결이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이름없는 새 한마리의 생존문제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생존문제나 하나님은 동일한 크기의 문제다. 인간은 큰 문제, 작은 문제가 차별되지만 하나님은 차별이 없다. 사렙다 과부 한 사람의 양식문제 해결이나 오천명의 양식문제 해결이나 같은 문제다. 3년반 동안의 양식공급이나 40년간 양식 공급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야곱 한가정의 양식해결이나 애굽전체의 양식해결이나 하나님에 의해서는 같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문제에도 차별이 없다.

하나님의 존재의 동일성 -- 삶의 현장에는 다양한 상황과 문제들이 존재한다. 사소한 문제가 있고 엄청난 문제가 있다. 아무리 다양한 문제와 불가능한 문제가 존재해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문제의 발생과 해결에 있어서 배후에 역사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엘리야의 사환이 본 손만한 작은 구름을 보여주신 하나님이나 하늘을 캄캄하게 덮은 큰비구름을 통해 큰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다. 양털 한뭉치에 기적을 보이신 하나님과 미디안 군대 13만 5천명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동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문제에까지 해당된다. 새 한마리의 생존에서 인류 전체의 생존에 섭리하신다.

이방인과 자녀의 차이 -- 이방인과 하나님의 자녀의 차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알고 인정하느냐 모르고 인정하지 않느냐에 있다. 이방인(불신자)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모른다. 인정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알고 인정하고 믿는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아울러 알고 믿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필요한 모든 공급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녀와 이방인의 차이다.

믿음의 크기의 배경 --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의를 구한 사람과 구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가 있게 된다.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문제를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수준에서 본다. 인간 수준의 시각은 문제를 넘어설수가 없는 작은 믿음이 되고 하나님의 수준의 시각은 문제를 넘어서는 큰 믿음이 된다. 보이는 것을 붙잡고 있는 믿음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믿음이 있다. 하나님을 붙잡되 한손으로 잡은 수준이 있고 두손으로 잡은 수준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경우가 있고, 하나님께 내가 붙잡힌 수준이 있다. 가장 완벽한 상태는 하나님께 내가 붙잡힌 상태이다.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불가능이 없고 두려운 것이 없는 큰 믿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