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을 세우라 1

Jun 11,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겔22: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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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세우라(겔22:30-31)

이 땅을 위하여(공동운명체): 이 '땅'은 누구의 땅인가? 나의 땅인가 너의 땅인가? 우리 모두의 땅이다.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네가 살아야 한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 네가 없이는 나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 의미도 없다. 하나님도 '우리'로 존재하시고 나 자신도 '영혼육'으로 존재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 땅을 위하여(삶의 현장): 조물주 하나님 외에 땅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땅은 인간에게 생존의 현장이며 구원의 현장이며 삶의 목적이 되는 사명의 현장이다. 땅이 중요한 것은 천국 때문에 더욱 그렇다. 땅에서 있을 때 천국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땅을 위하여(하나님의 계획): 땅은 만드신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고 허락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실현되는 현장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스쳐지나 가는 길목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허락하신 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벽을 쌓는 자, 막는 자 -- 성벽을 쌓을 수 있는 자가 막을 수 있는 자이다. 빈 땅에 성벽을 쌓아야 하고 무너진 기존의 성벽을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빈 땅에 성벽을 쌓는 사람이다. 쌓거나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다. 남을 붙들어 주고 일으켜 줄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남이 붙들어 주고 일으켜 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은 책임적 존재이다. 인격적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구원과 축복과 승리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자기 책임을 감당하는 자에게 해당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지키시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는 세우는 행위와 지키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벽을 세우는 자, 무너뜨리는 자 -- 인생은 필연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세우는 선택이든지 무너뜨리는 선택이든지 필연적으로 해야만 한다. 세우는 선택인줄 알았으나 무너지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고 무너지는 선택인줄 알았으나 세우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바라기는 인생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우고자 할 때 기초가 무엇이었느냐이다. 여호와께서 세우시고 지키시는 조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계3:10).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3) 하나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높이기도 낮추기도'하신다(삼상2"6-7)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일 할 사람)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비전을 위해 일 할 사람을 찾으신다. 사람들은 숫자와 규모를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은 철저히 자격을 따지신다. 기드온 병사 선발에서 삼만이천명 중 최후에 남은 숫자가 300명이었다. 매사가 다 그렇지만 전쟁 역시 사람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싸우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이 내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막아서서' 나(하나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자이다. 언제까지 막아서야 하느냐? 죽음이 나를 쓰러뜨릴 때까지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언젠가 죽음이 온다. 위협 앞에서 신앙과 사명을 저버리고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단 한사람도 없었다) -- (겔22:25-29)에 보면 '선지자, 제사장, 방백, 백성'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영적 상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영적으로 총체적 난국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찾으셨다.(렘5:1)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멸망이 아니다. 구원이다. 저주가 아니다. 축복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로부터 백성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버렸다. 소돔이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셨다. 사람들은 세상이 말세라고 한탄한다. 악한 사람이 많아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망하는 사회와 흥하는 사회의 다른 점이 있다. 망하는 사회는 서로 상대방 잘못 때문에 사회가 타락한다고 불평한다. 흥하는 사회는 각자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 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단 한사람이 중요하다) --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세상의 부패와 타락이 문제가 아니라 빛과 소금의 역할이 문제라는 것이다. 부패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보다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움 받는 것은 희생이 필요없지만 도움주는 것은 희생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설명하시며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고 말씀 하셨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모세 한 사람이 쓰였고 애굽의 기근 해결을 위해 요셉 한 사람이 쓰였다. 룻 한 사람이 나오미 가문을 일으켰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인류 전체를 구원하셨다. 오천명의 굶주림을 해결한 것은 오병이어를 바친 한 소년에 의해서였다. 하나님의 손에 결정적으로 쓰임받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