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라

Jun 04,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왕상18: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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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라(왕상18:30-35)

다시 나타난 옐리야 -- 3년반 전에 사라졌던 엘리야가 다시 등장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기근 시작을 경고하고 사라졌던 엘리야가 기근이 극심하여 모든 생명체가 멸절 위기에 놓인 최악의 상황에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다시 나타났다. 물질 풍요로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하던 백성과 아합 앞에 나타나 진짜 하나님이 여호와인지 바알인지 확인하는 도전을 제기한다. 진짜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상황보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확실히 입증된다.백성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의 어떤 이슈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의 존재 문제다. 인류역사 전체의 핵심 문제다.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신이 어떤 신이냐의 문제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내게로 가까이 오라 -- '가까이'는 '멀리'와 상대적인 관계에 있다. 백성에게 가까이 오라는 말은 백성이 멀리 있다는 증거이다. 거리(Distance)는 반비례적인 의미와 정비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과 멀리 있다는 것은 바알과 가까이 있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면 바알과 멀리 있다는 의미이다. 정비례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하나님의 제단(교회), 하나님의 종(엘리야)과의 거리로 증명된다. 결국 인생의 생사화복(구원과 멸망, 축복과 저주)는 거리(Distance)에 있다. 하나님과의 거리, 부모와의 거리, 부부의 거리, 교회와의 거리, 주의종과의 거리, 믿음있는 사람과의 거리 믿음없는 사람과의 거리, 긍정적인 사람과의 거리, 부정적인 사람과의 거리가 나의 운명을결정한다.

내게로 가까이 오라 -- 가까이와 멀리 현상의 전제는 관계된 상대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일때 비극은 시작된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알은 농사(비)의 신,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다. 쉽게 말하면 돈의 신과 쾌락(성적)의 신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멀리해라 반대해라' 하지 않는다.돈도 즐겨라 쾌락도 즐겨라 유혹하여 돈과 쾌락에 가까이 오게 한다.한번쯤 예배 빠지는 것, 한번쯤 순종치 않는것, 한번쯤 음주하는것을 기볍게 여기게 한다.마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아주 조금씩 멀어지게 한다. 둘 사이에서 하나님보다 반대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갈등을 느끼면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한다. 둘 사이에서 결국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혼합주의의 결정적 함정이다.

열두돌을 가져오라 -- 열두지파 대표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할 때에 가져 오라고 한 것이 있다. 각자 돌을 가지고 오라고 헀다. 예배가 드려지는 제단(교회)의 기초는 반석(믿음)이다.(마16:18) 제사를 드릴수 있는 자격은 하나님의 자녀뿐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람의 삶의 기초는 오직 믿음이다. 삶의 기초에 따라 무너지는 삶과 무너지지 않는 삶으로 구별된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 있다. 반석은 믿음(신앙)이요 모래는 신념이다. 확고한 믿음에 의한 삶이 있고 확고한 신념의 삶이 있다. 마지막 심판 앞에서 기초의 진리성(하나님의 의)이 입증된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단 하나만을 요구하신다. 믿음이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11:6)

단을 쌓으라(여호와 이름을 의지하여) -- 믿음의 용도는 하나님의 제단(교회)과 제사(예배)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쌓는(세우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쌓고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무너뜨리는것이다. 하나님(예수)이름으로 세우는 것은 제단(교회)이요, 내이름으로 세우는 것은 바벨탑이다. 역사 속의 열국들의 흥망성쇠의 결정적 원인이 있다.교회와 예배가 무너졌었느냐 세워졌었느 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결정됐다. 예배와 교회를 무너뜨린 구소련이나 북한이 그 경우다.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는 나라들의 공통점 또한 그렇다. 종말시대의 특징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다는 기록이 나온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환난으로 흩어져서도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다. 교회와 예배가 왕성하게 세워져야한다.

단 위에 번제물을 놓으라 --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드려져야 한다. 제사는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으로 인한 구속에 대한 감사를 나의 희생을 나타내는 것이다. 드려지는 제물이 나의 희생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님이 구속하신 영혼 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의 희생을 드리는 것이다. 벌려진 나무는 찢겨진 십자가요 열려진 십자가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채찍과 창에 찢기신 주님의 눈물은 죄가운데 있는 모든 영혼들을 위한 눈물이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흘리는 눈물의 체험은 주님의 눈물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어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에 감사하여 한없이 흘리게 되는 눈물의 강이 흐르게 된다.

도랑을 파라 -- 번제물 위에 열두 통의 물을 부어 도랑에 넘치게 흐르게 하는 의미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과 슬픔과 아픔의 눈물의 강이 우리에게 은혜와 생명과 기쁨과 감사의 눈물의 강이 되어 우리의 삶 가운데 넘쳐 흐르게 하시는 것이다. 가슴 속에 이 눈물의 강이 흐르는 사람은 죄악의 땅으로부터 멸망의 땅으로부터 저주의 땅으로부터 완전 분리되는 축복의 삶을 살게 된다. 애굽 땅과 광야 땅 사이에 홍해가 있었고 가나안 땅과 광야 사이에 요단강이 있었다. 이 강을 건넌 자만이 애굽에서 광야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