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믿는자, 못보고 믿는자

Apr 30,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요2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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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믿는자, 못보고 믿는자(요20:27-29)

믿음의 현실적 갈등 -- 믿음과 상관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믿음의 필요성을 안다. 그러나 믿음을 갖기 힘든 이유는 믿음의 근거와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와 기준에 두지 않고 인간적 기준과 사고방식에 두기 때문이다. 육적 기준과 영적 기준이 상충되는 갈등을 겪게 된다. 믿음의 문제는 신앙생활의 최초의 문제요 최후의 문제다. 인생의 핵심 문제가 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원리(구원의 진리)는 하나님의 원리이다. 상반된 세상의 논리는 육적인 원리요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는 마귀적 원리이다. 마귀의 원리는 사망의 원리이며 멸망의 원리이다. 이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문이다. 신앙생활은 생사화복의 기준과 원리가 완전히 바뀌는 삶을 말한다.

믿음의 정의 -- 믿음의 정의를 히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희망하는 것들을 지금 이루진 것 같이 믿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지금 보는 것 같이 믿는 것이다. 보여야 믿어지고 만져져야 믿어지는 것이 상식 이다.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네손을 내밀어 내 손과 발을 옆구리를 만져 보라고 하신 이유다. 천국과 지옥도 만져보고 나서야 믿을 수 있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므로 보기전에 만져보기 전에 믿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구원의 전제로써 은혜요 축복이다. 천국과 지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 천국 지옥이 확정되어야 한다. 바라는 것이 믿음으로 실상이 되어야 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믿음으로 증거확보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존재형태 -- 구원(천국과 지옥)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실존,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실존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늘나라의 존재를 사실로 받아 들이는 것과 그사실에 대하여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은 지식적 동의일뿐이다. 믿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관한 지식, 하나님에 관한 지식,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존재, 천국의 존재가 나의 내부에 존재해야 나의 구원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안에 존재하느냐 밖에 존재하느냐가 구원여부를 결정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천국이 현재 내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안보이는 것이 내안에서 보이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내안에 이루진 것이고, 가지지 못한 것이 내안에 가지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생성 -- 믿음의 소유가 어려운가 어렵지 않은가? 둘 다 맞는다. 나의 행위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 의해 어려울 수도 안 어려울 수도 있다. 믿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물, 은혜이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해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믿음의 근거는 사람의 지혜에서 비롯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전2:5) 하나님의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기인된다. (고전2:12)직접적인 믿음의 생성은 말씀에 의해서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된다.(롬10:17) 거듭나는 것이 썩어질 세상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다.(벧전1:23)

믿음의 연단 -- 믿음의 생성과 함께 연단의 필요성이 있다. 믿음의 상태는 문제를 만나야만 알 수 있고 문제를 통해서 믿음이 점검되고 훈련된다. 믿음이 선물인것은 사실이지만 믿음의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련이 필요하다. 연단은 두 가지 작용을 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 내리도록 작용한다. 내생각은 무너져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견고히 서야 한다. 말씀이 견고히 설수록 믿음이 견고해진 것이다. 시험 앞에서 근심하고 염려하는 수준에서 담대하고 기뻐하는 수준으로 믿음이 향상되는 것이다. 모든 시련을 끝까지 이기는 믿음이 될때 하나님의 나타나시는 그 날에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듣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믿음의 결과 -- 믿음은 결과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뀌게 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믿음의 유무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구원의 방향으로 혹은 멸망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 길을 가고 있다. 비교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린다해도 방향이 중요하다. 생명을 향해 가고 있는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결과는 환경의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 된다면 인생은 불공평하고 억울한 것이 되고 만다. 감사하게도 오직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

보이는 것을 믿음의 함정 -- 예수님은 왜 보이는 것보다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것이 복되다고 하셨는가? 십계명의 핵심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하나님만을섬기는 첫째 조건은 우상을 배격하라는 것이다. 형상을 만들지도 섬기지도 절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상징하는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사람이 생존 때문에 피조물인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필요 때문에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래서 탐욕이 우상 숭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