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사실성

Apr 16,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눅24: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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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사실성(눅24:36-39)

부활의 소문 --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던 여인들에 의해서 전해졌다. 십자가 사건이후 함께 모여 문을 닫고 두문불출 하던 제자들은 부활의 소문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건을 목격한 자가 있고 사건에 대하여 소문을 들은 자가 있다. 제자들은 부활의 소문을 허탄한 소리로 여겼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사실에 입각한 신앙이 있고 소문에 입각한 신앙이 있다. Nonfiction Christian이 있고 Fiction Christian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 진리와 상식, 사실과 소문, 예수님의 말씀과 바리새인들의 말이 있다. 어느 것을 더 믿느냐가 중요하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뜬 소문이나 상상하는 이야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체험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부활과 계시 -- 제자들이 부활의 소문으로 놀라고 있는 장소에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셨다.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의 말씀에서 "서서"의 원래 의미는 '무게 확인을 위해 저울에 달다', '가격 확인을 위해 가격표를 붙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증인을 세우다'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친히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밝혀낼 수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셔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신 것이 예수님이시다. 상징이 아닌 본체요, 증인이 아닌 본인이요, 대리자가 아닌 당사자가 오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0-11)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과 부활을 직접 보여 주셨다.

허상과 실상 -- 본문 37절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여 직접 나타나신 예수님을 육체가 없는 영(유령)으로 보고 놀라 무서워했다. 본체를 상징으로 보고 실상을 허상으로 실제적인 존재를 비실제적인 존재로 본 것이다. 기뻐할 상황을 무서운 상황으로 보고, 확신에 넘쳐야 할 상황을 불안과 의심의 상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실체로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시각에 의해 마음이 결정되는 아니라 마음에 의하여 시각이 결정되는 것이다.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항상 자신이 아닌 객관적인 모든 것들이 문제라고 보게 된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이 것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부활과 체험 --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체험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죽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는 구원의 체험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된다. 거듭나는 체험에서 시작된 체험은 평생토록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된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다함께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림받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만져 보라고 하신다. 직접 확인시키시는 것이다. 구원받은 삶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님의 손을 만져보고 주님의 발을 만져보는 체험의 연속인 것이다.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체험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삶인 것이다.

예수님 부활과 나의 부활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정확하게 우리는 예수 부활의 몸과 똑같은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 가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6-17).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의 부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심 -- 현재 우리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믿기지 않는 기적들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이미 계획된 사건들이다. 단 한가지도 우연은 없다. 우연은 불신자의 말이다. 믿는자는 우연이 없다. 필연뿐이다. 율법의 일점일획까지 다 이루신다. 천지가 없어질 지라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말씀을 배제하면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풀 수 있는 길이 없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모르며 말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인류 전체의 문제는 물론 개인의 삶의 문제도 철저히 말씀에 의해서 풀어야 풀린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야 한다. 그 것조차도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하다. 마음이 열리는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