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4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Apr 02,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5:6
Download audio file | Open in a popup window

(마5:6)팔복(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주린자의 행복-- 행복과 배고픔의 함수관계가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개의 빵 앞에서 느끼는 마음이 다르다. 같은 빵을 대하는 마음 자세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행복한 상황과 불행한 상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이 환경 중심이라면 인생은 불공평한 것이다. 배부른 상황에서 불평할수도 있고 감사할수도 있다.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배고픈 고생을 해본 사람은 음식 앞에서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은 음식 상태를 트집 잡으며 불평하기 쉽다. 음식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불행의 원인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풍족해서, 고생해서가 아니라 고생을 몰라서이다.

의와 악의 기준 --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를 의인이라면 악인은 악에 주리고 목마른자 일 것이다. 의와 악의 차이는 '의'에 있다. 죄인은 자기의를 기준으로 하는 삶을 살고 구원받은 의인은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하는 삶을 산다. 구원받은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시인하고 믿는 믿음으로 산다. 악인은 자기의를 절대시하여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산다. 의인은 육신의 배고픔 해결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고 중요시 하는데 반해 악인은 육신의 배고픔 해결을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시하고 중요시한다. 자기를 절대시하는 인생이 있고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인생이 있다. 인생의 생사화복의 비결은 간단하다. 자기를 절대시하느냐 하나님을 절대시하느냐에 있다. 자기를 절대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게 된다. 이것이 죄인이다.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영적 배고픔과 육적 배고픔의 관계 --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사람은 영적 상태와 육적 상태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육 관계의 필연성은  의인과 악인의 차이가 없다. 육적 배부름과 영적 배부름과 비례하고 육적 배고픔과 영적 배고픔이 비례한다. 육적으로 배고플 때 마음도 배고파진다. 육적으로 배가 부르면 마음도 배가 부르게 된다. 육신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와 육신적으로 풍족하고 넘칠 때 하나님을 대하는자세가 다르다.육신적으로 어떤 상태일 때 하나님을 향해 간절했나? 풍족할 때가 아니다. 궁핍하고 어렵고 힘들 때였다. 시대적으로도 가난하고 힘들고 열악했던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간절히 기도했고 예배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겼다. 풍족한 시대가 되면서 예배가 소홀해지고 기도를 게을리 하기 시작했다. 영적으로 배부른 시대가 된 것이다.

예수 만난 사람의 공통점 -- 예수님 공생애 동안 따라 다니는 군중들은 삶이 풍족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유층이나 상류층 보다는 가난한 빈민층과 노약자 병든자 귀신들린자 등, 소외 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는 전혀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식민지 상황이 아니라 해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인생들이 찾아 갈 곳은 오직 주님 뿐이다. 벳세다 들판에서 굶고 있던 군중들처럼 모든 인생은 예수님에 의해서만 양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인생, 완전히 비어있는 인생만 결국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자신이 비워지지 않고는 예수님을 받아 들일 수없다. 완전히 비워진 사람만이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 들인다.

육신의 비움과 영혼의 비움 -- 하나님은 인생을 긍휼히 여기사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허락하신다. 삶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도저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기대와는 달리 오랜동안 어려움이 지속될수도 있다. 경제적 상황이 궁핍하게 되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게 될수도 있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경미한 상태였으나 악화되기 시작하여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뜻은 확실하다. 영적으로 비우고 계신 것이다. 건강이 됐든 물질이 됐든 육적으로 비우는 것은 영적으로 비우는 것이다. 바라기는 신속히 깨닫는 길이 지혜로운 것이다. 영적으로 비워지면 육적 상태를 더 악화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을 비울 때 완전히 비워야 한다. 완전히 비우는 방법은 나의 소유 전부를 바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 나의 전부라는 중요성을 가진 것을 말한다.

배고픔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 배고픔을 아는 자가 있고 모르는 자가 있다. 알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모른다는 것은 죽었다는 증거가 된다.  살아있는 경우도 아는 자는 건강하고 깨어있다는 증거이고 모르는 자는 잠자고 있든지 병들었다는 증거이다. 영적으로 살아있고 건강할 때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무한한 갈증과 갈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위해 쓰임받는 그릇이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의 갈증이 나의 갈증이 되어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예수님이 원하시는 온 인류를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십자가상에서의 목마름은 인류 구원의 갈증이신 것이다. 그 갈증이 나의 갈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