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1 (가난한 자)

Feb 26,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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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가난한자)(마5:3)

가난한 자의 복 -- 팔복에서 말하는 복의 주인공은 부요한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이다. 구원이 필요한 자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다. 부자이기 때문에 불리한 것이 있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유리한 것이 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측정이 안 되는 엄청난 부를 소유했을 지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육신적 부요와 영적 부요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말세 교회를 상징하는 요한 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 부요에 도취되어 영적 빈곤을 알지 못하고 그 반대로 알고 있었다. 광야 연단의 목적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육신적으로 낮추며 주리게 하 여 영적으로 낮아지게 하고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단을 통과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고 삶의 목적이 달라진다. 세상적 목적이 아닌 천국적 목적을 위해 살게 된다.  

가난한 자의 세가지 상실재산상실:가난한자의 의미는 재산을 상실하여 큰 불행 속에서 방황하는 거지이다. 재산 상실의 원인은 무엇인가? 축복의 상실이다. 축복의 상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실한 것 -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것이다. 사울왕이 불순종했을 때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렸다'고 말씀하셨다.(삼상15:2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이며 기업이요 상속 재산이다.(요6:63, 시119:6-57) 사람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나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물질을 버리고 말씀을 택하느냐, 말씀을 버리고 물질을 택하느냐 의 갈등이 모든 인생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가난한 자의 세가지 상실큰 불행: 여기서의 큰 불행은 불행의 크기가 아닌 총체적 불행을 말한다. 세상의 불행은 세상의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행복이 아닌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세상의 행복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평강과 희락을 구하는 삶이어야 한다. 세상적 행복을 위해 영적인 행복을 소홀히 하면 영원한 행복을 버리고 만다. 물질 가난은 마음의 가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광야에서 낮추셨다는 것은 물질적 육신적으로 낮추셔서 마음을 낮추셨다는 것이다. 육신적으로는 불행한 상황이지만 영적으로는 행복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세가지 상실방황 : 방황은 방향을 상실했을 때 발생한다. 예수님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8:20)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여우와 새 -  인간이 아닌 모든 피조물은 집이 다 있다. 집없는 피조물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집이 없다. 범죄한 인간은 에덴 동산을 상실한 이후 집(천국)이 없어 방황하는 인생을 산다. "죄"는 빗나간 화살이다. 천국 집에 가는 방향을 잃어 버린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만나야만 집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죄를 시인해야 한다. 예수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길을 상실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거지는 갈곳이 없다. 집이 없는 거지는 갈 곳이 없는 것이다. 갈  곳이 없는 거지가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주님 품뿐이다. 집이 없는 거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가 가난한 자인가?(깨달은자와 못 깨달은자) -- 가난한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경제기준의 빈부가 있고 권력기준의 빈부가 있고, 지식기준의 빈부가 있다. 어떤 기준에 의해 빈부를 나누든지 인간은 절대 가난한 존재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욥의 고백은 모든 사람의 고백이다. 인간은 무엇에서 출발했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 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가 있고 깨닫지 못하는자가 있을 뿐이다. 깨닫는자는 누군가? 산자이다. 누가 산자인가? 영이 살아있는자이다. 영이 산자는 산영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자이다. 아들의 영을 받은자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안다. 영이 죽어있는 자가 있고 살아있는자가 있다.

누가 가난한 자인가?(비운자와 안비운자) -- 부자와 가난한자의 차이는 상황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응에 있다. 부자는 겸손하기가 쉽지 않고 무시와 멸시를 참기가 어렵고 과시욕을 참기 어렵다. 반면에 가난한 자는 겸손할 수 있고 무시와 멸시를 감내해야 하고 할 수 있다. 과시할 것이 없다. 광야에서 물리적으로 낮추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서였다. 비운자만이 천국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 이론의 예수가 아닌 실제 예수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육적 양식이 아닌 영적 양식, 육신의 장막이 아닌 영적인 하늘나라 장막이 진정한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아를 철저히 비운 자만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얻은자가 있게 되고 모든 것을 잃는자가 있게 된다. 자아를 비운자는 모든 것을 얻는자가 되고 자아를 비우지 않은자는 모든 것을 잃는 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