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발로 밟는 땅 1

Jan 15, 201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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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발로 밟는땅(수1:2)

일어나 -- 일어나는 자와 못 일어나는 자:일어날 수 있는 자가 있고 일어날 수 없는 자가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자는 살아 있는 자와 깨어있는 자이다. 일어날 수 없는 자는 죽은자와 잠자는 자이다. 자립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에 따라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자가 있고 남의 도움에 의지해야 일어날 수 있는 자가 있다. 시험을 이기는 사람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

현재 일어날 수 있어야 주님 재림때 일어 날수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현실의 절망을 이길 수 있고 예수님 재림때 죽음을 이길 수 있다. 일어 날 수있는 사람과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이며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냐의 차이에 있다. 최종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때는주님의 재림 때이다. 예수 안에서 죽은자와 그때까지 산자는 홀연히 변화하여 주님을 맞이한다.

혼자 일어남과 더불어 일어남 : 남의 도움으로 일어나야 하는 사람은 성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 언제나 내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일으킬 수있다.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쓰러뜨리는 사람이 있다, 혼자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까지 일이키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사람까지 일으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삶이 축복의 통로요 생명의 통로다.

건너 -- 장소 이동:'건넌다'는 것은 장소 이동을 말한다. 변화의 현상은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변화의 현상은 장소의 변화, 장소의 이동이다. 인생의 변화 중에서 중요한 변화가 장소이동의 변화다. 본문에서 건너는 것은 광야에서 가나안쪽으로 건너는 것을 말한다.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은 노예의 삶에서 자유인의 삶으로 바뀐 것이다.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나그네 인생이 정복자 인생이 되는 것이다.    

장애물의 존재가 필연이냐 우연이냐? 문제에 부딪히는 것은 이상한 일, 비정상적인 일,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인생 길에는 필연 적으로 장애물이 있다. 산이 없는 지역이 없고 강이나 바다가 없는 지역이 없다. 아무런 장애가 없는 길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있다. 문제(장애물)가 있다는 것이다. 물가운데 불 가운데로 지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유익성: 사43:1-2을 보면 '물 가운데 지날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사 침몰치 않게 하며 불 가운데 함께하사 타지도 사르지도 못하게 하신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요 아버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고 나를 확인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된다.

현재의 요단강과 불시험을 통과하느냐 못하느냐에 의해서 미래 종말에 대비한 나 자신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요단강과 불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은 장차 종말의 마지막 요단강을 통과할 수 있고 지옥불을 통과할 수 있다. 현재 부딪히는 모든 고난과 환란은 장차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이 된다.

가라 -- 인생은 전진 아니면 후퇴이다. 정지된 상태, 현상유지 상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정지 시킬수 있다면 혹시 모른다. 시간을 정지 시키지 않는한 현상유지는 후퇴이다. 인생은 시간처럼 계속 전진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과거를 떠나라.(사43:18-19)"이전 일을 기억치 말며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인생의 장애물 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앞에 있는 장애물은 의식하면서 뒤에 있는 장애물은 의식하지 못한다.미래의 구원과 축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과거에 형성된 고정관념과 습관, 이미지이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독생자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그말씀과 예수가 영생이요 복이다.  

목표확정(방향확정):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라는 방향이 확실해야 한다. 방향이 맞지 않으면 빨리 갈수록 위험하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을 목표로 할 것인가? 내가 정한 땅을 목표로 할 것인가? 누가 정한 땅이냐가 목표의 가치를 정하고 성취의 가능성을 보장한다. 구원이 중요한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가 방향성이다. 인생이 방향은 두가지 방향이다. 천국방향과 지옥방향이다. 축복방향과 저주방향이다. 인생의 방향은 빈부귀천 유무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속도: 구원과 축복과 형통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의 성공을 위해서 절대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속도이다. 하나님과 속도가 일치되어야 한다. 속도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방향이 일치된 상태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속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느리기 때문에 하나님과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경우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수 있고 빠르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서 가고 있을 경우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속도를 맞추는 방법은 하나님이 앞에 계신 것이 보여야 한다. 아무리 조급해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보고 따라 가야 한다.